지난 달 1년 넘게 기다려 온 '대한민국 스펙트럼 플랜(2024~2027년)'과 '전파진흥기본계획(안)'이 공개됐다. 대한민국 스펙트럼 플랜은 2012년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17년 '한국형 정보통신기술(K-ICT) 스펙트럼 플랜', 2019년 '5G+ 스펙트럼 플랜'에 이어 디지털 심화 시대로 접어든 현시점에서 필요한 국가 주파수 활용 로드맵이다.
스펙트럼 플랜 등 발표가 당초 예상했던 시점보다 늦어진 것에 대해 정부는 관계 부처와 관련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지난해 말 개최된 세계전파통신회의(WRC-23)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동안 기다린만큼 주파수의 최적 활용을 위해 촘촘하게 설계한 세부 내용이나 구체적인 전략이 돋보였다. 전반적으로 잘 짜인 정책 중에 그동안 격렬한 논쟁 주제이자 이 분야 관련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는 주파수 재할당 정책이 눈에 들어왔다.
스펙트럼 플랜과 전파진흥기본계획(안) 모두 이동통신 주파수 관련 내용에서는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용 기간이 만료되는 주파수 재할당 추진과 5G 주파수의 추가공급 및 주파수 자원의 광대역화 검토, 다양한 산업군으로의 개방을 통한 최적 활용 추진 등이 그것이다.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를 상충하는 요구에 맞게 합리적,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주파수 할당 및 재할당 정책이 디지털 심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향후 1년간 주파수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재할당과 관련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년 이용 기간이 종료되는 3G(20㎒폭)와 4G(350㎒폭)의 경우 내년 6월까지, 2028년에 종료되는 5G(300㎒폭)는 2027년 11월까지 재할당 세부 방안을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다. 다소 아쉬운 대목은 재할당 시기가 도래하니 앞으로 검토해 재할당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만으로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의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재할당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 전반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관련 연구반 등을 이른 시일 안에 가동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기간 종료에 쫓겨 주파수 재할당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도 기존 안을 답습한 전례를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간 국내 주파수 재할당 정책은 그 원칙이나 재할당대가 산정방식 등과 관련해 정부의 재량 행사의 범위, 재할당대가 산정기준의 불명확성 및 불투명성, 답답할 정도의 자료 비공개 등 소위 '깜깜이식 행정'에 대한 비판이 상당했다. 다가올 재할당 관련 혼란과 불안감을 주는 것은 자칫 국가가 주목하고 있는 6G나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기술에 대한 투자에까지 악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패권 경쟁이 점차 과열되고 있는 현시점에 필요한 건 주파수 재할당 여부로 인한 불확실성이 제거돼 네트워크 품질과 신기술 역량 강화에 적극적일 수 있는 정책적 기반 마련이다.
특히 주파수 정책과 같이 천문학적인 대가가 거론되는 경우 제도 운영의 일관성과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은 필수다. 재할당 정책에 대한 사전 예측을 토대로 사업자가 실효적인 중장기 투자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재할당 대가 산정기준을 투명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무엇이 디지털 전환 가속화 지원이라는 주파수 정책목표 달성에 필요한지, ICT 혁신을 통한 국익 실현에 부합할지를 심사숙고해 재할당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조속히 그려지길 바란다.
김남 충북대 명예교수 namkim@cb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