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5억’ 값어치 하냐고? 무례하긴, 롤스로이스야

2024-12-21

가장 인기있는 모델, 디자인 바꾸고 섬세하게 개선…미국 출시가 35만5000달러부터

더 빠르고 큰 차는 많지만 ‘마법의 양탄자’ 탄 것 같은 승차감은 대체 불가…“감각이 다르다”

자동차란 도대체 뭘까? 뭔데 이렇게까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놀라움과 선망, 이해와 쾌감, 가끔은 약간의 허무함까지. 11월 중순, 프랑스 니스에서 약 3시간 떨어진 와이너리 근처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와이너리의 이름은 샤토 라 코스트였다.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무심코 들어선 입구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었고, 와이너리 곳곳에 눈이 번쩍 뜨이는 예술 작품과 건축이 즐비한 곳. 설명하자면 또 한 편의 칼럼이 필요한 공간에서 우리는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2를 타고 막 길을 나선 참이었다.

롤스로이스는 1904년에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가 만든 자동차 회사다.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럽고 비싼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2의 한국 출시 가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출시 가격은 35만5000달러였다. 12월15일 환율, 달러당 약 1436원으로 계산해 보면 약 5억985만원 정도. 말하자면 시작가다. 옵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취향과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롤스로이스에는 ‘비스포크(bespoke)’라는 절차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 옵션을 수제작으로 의뢰할 수 있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세계. 인생의 성취를 이뤄낸 사람이 스스로에게 수여하는 감각의 트로피인 셈이다.

5억이면 흔히 하는 말로 ‘집 한 채 가격’이다. 한 달에 300만원씩 약 14년2개월을 저축하면 모을 수 있다. 3000만원 정도 하는 차를 16대 사고도 돈이 살짝 남는다. 차를 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차는 아닐 것이다. 궁극의 럭셔리는 시간과 자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럭셔리는 알아보고 가질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문화일 것이다. 세상은 넓고 롤스로이스는 어엿하다. 선망과 소유의 대상이 된다.

고스트는 롤스로이스를 대표하는 기함, 팬텀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날렵한 모델이지만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크기와 디자인만으로 확연히 돋보인다. 고스트 시리즈 2의 전장은 5534㎜다. 5m50㎝를 넘는다. 전폭은 2m에 가깝고 무게는 2490㎏이다. 크고 무겁다. 하지만 운전할 땐 유령에 홀린 것처럼 움직인다. 다른 어떤 차보다 부드럽고 조용한데 심지어 날카롭게 파고든다. 지구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감각의 브랜드가 새로 출시한 세단인데 여타의 스포츠카들이 자랑하는 성능을 우습게 뛰어넘는다.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2는 6750cc V12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쓴다. 최고출력은 571마력,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8초다.

롤스로이스가 고스트를 처음 선보인 건 2009년. 2세대를 출시한 건 2020년이었다. 기사를 두고 뒷좌석에 ‘엣흠’ 하며 타기보다 직접 운전하기를 선호하는, 이른바 ‘영 앤드 리치’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모델이었다. 2023년 롤스로이스의 글로벌 판매량은 총 6032대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고스트가 가장 많이 팔렸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모델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에 출시한 고스트는 이른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그래서 ‘시리즈 2’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엔진이나 뼈대 등의 핵심 요소들은 유지한 채 디자인을 바꾸고 섬세하게 개선해 새롭게 만든 버전이다.

그래서 돈값은 할까? 이쯤에서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렇게라도 따져보지 않으면 5억부터 시작하는 이 차의 가격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그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라면 취향에 따라 더 멋진 차를 숱하게 찾을 수도 있는 가격대다. 속도를 겨루기로 마음먹으면 역시 5억원까지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빠른 차를 (심지어 두어 대 정도) 손에 넣을 수 있다. 고급스러움으로 따져봐도 다르지 않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의 모든 차를 덜컥 살 수 있는 액수다.

그래서 이날은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약 15년 이상 한국에 출시한 거의 모든 차를 국내외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한 경험치를 총동원해 변별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고스트 시리즈 2와 함께 쭉 뻗은 고속도로와 구불구불한 시골길, 조용한 마을과 시내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양하게 달렸다.

롤스로이스의 실내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다른 어떤 탈것과도 다르다. 비행기나 배, 요트와 견줘봐도, 비슷하게 비싼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봐도 그저 다르다. 더 좋고 더 부드럽고 더 안락한 수준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도로의 굴곡을 소화해내는 성숙함. 그걸 승객의 몸으로 전달해내는 감각. 요철을 넘거나 돌이 많은 땅을 달리거나 잘 닦인 도로이거나 관계없었다. 풍요의 결이 다르다. 고급함의 방향과 성취도가 다르다. 적어도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를 ‘쉼’의 감각으로 치환해 내는 데에는 롤스로이스를 따라올 브랜드가 없을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그들의 승차감에 대해 ‘매직 카펫 라이드(Magic Carpet Ride)’라는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다. 알라딘과 재스민 공주가 그날 밤에 타고 날던 그 마법의 양탄자를 탄 것 같은 승차감을 롤스로이스에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마법의 양탄자 같은 건 타본 적도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 위에 앉은 듯하다. 실재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거니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재미마저 있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돌리는 만큼 반응한다는 뜻이다. 그 반응이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쭉 뻗은 길뿐 아니라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가며 질주해봐도 그 크기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민첩하게 반응했다. 이러니 롤스로이스에서 가장 인기있고 젊은 모델이지. 그렇게 납득하면서 스피커의 볼륨과 공조 장치의 섬세함, 가죽의 질감과 스티칭의 촘촘함을 살폈다. 원목의 실감과 조용함의 정도를 눈과 손끝과 손등으로 감상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어졌다. 자동차란 도대체 뭘까? 롤스로이스 고스트 시리즈 2는 어마어마하게 빠르지만 그보다 빠른 차도 많다. 거대한 차체와 넓은 공간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크거나 그만큼 고급스러운 차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롤스로이스가 새로 출시한 고스트 시리즈 2에는 5억원을 훌쩍 넘는 가격표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럭셔리의 조건은 시간과 스토리, 그러니까 헤리티지라는 정답 같은 말은 다소 게으르니 일단 치워두는 것이 옳다. 대신 롤스로이스가 만들어낸 감각의 결은 다르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할 수밖에 없겠다. 가격에 상응하는 대접을 기대하거나 비교 대상을 찾지도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작가의 서명이 거칠게 적혀 있는 예술 작품 같은 것. 딱 하나뿐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지구에 딱 한 채만 있는 누군가의 건축 같은 것이다.

대체할 수 없고, 유일한데 아무나 꿈꾸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감상하고 즐길 줄 알아서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는데 소유할 수 있는 여유마저 있다면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세계. 그래서 오래 선망하고 꿈꾸다 마침내 목표한 바를 성취해 낸 사람만이 뿌듯하게 소유하게 되는 물성. 롤스로이스가 창조해 낸 감각의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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