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필 이끌고 내한하는 거장 비치코프···“체코필은 고유의 사운드와 목소리를 지닌 오케스트라”

2025-10-19

오늘날 고유의 사운드를 가진 오케스트라는 드물다. 20세기 이후 레코딩이 확산되고 음악가들의 국제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점차 동질화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들은 개성적인 사운드를 보유하고 있다.

1896년 창단한 중부 유럽의 명문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그런 희귀한 악단들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 “베를린필이 화려한 제스처와 완벽한 테크닉을 결합하고, 콘세르트허바우가 정교한 보석의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면, 체코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물과 같다”고 평가했다.

2년 전 내한공연에서 탁월한 음악성과 압도적인 연주력으로 격찬을 받았던 체코필이 오는 28일과 29일 각기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이번에도 상임 지휘자 겸 음악감독 세묜 비치코프(73)가 함께 한다.

비치코프는 최근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에서 “체코필이 고유의 사운드와 목소리를 지닌 오케스트라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 누가 더 낫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 ‘다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치코프는 오케스트라 고유의 소리를 잘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위대한 전통과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때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할 뿐 아니라, 자신을 오케스트라의 정체성과 통합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2017년 당시 상임 지휘자 이르지 벨로홀라베크의 타계 이후 체코필 단원들이 만장일치로 비치코프에게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체코필은 농밀한 보헤미안 사운드와 비치코프의 정교한 해석이 결합된 연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 독자들의 투표를 통해 ‘2024년 올해의 오케스트라’로 선정됐다.

오는 28일에는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의 교향시 ‘나의 조국’을, 29일에는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1841~1904)의 첼로 협주곡(한재민 협연)과 비치코프의 모국인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서구 음악의 형식 속에 러시아의 정서를 표현한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슬라브 문화와 서유럽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은 체코필과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비치코프는 “해외 투어에서는 체코필이 지닌 최고의 강점을 보여주는 음악을 연주하려고 한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그런 음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체코의 민족적 정체성이 응축된 ‘나의 조국’은 체코필의 유전자에 깊게 각인된 작품이다. 체코필은 이 작품을 1946년 제1회 프라하의 봄 음악제부터 올해까지 무려 76회에 걸쳐 연주했다. 특히 공연 당일인 28일은 체코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독립기념일이어서 더욱 뜻깊다.

비치코프는 1952년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예술의 자유를 좇아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80년대부터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저에게 ‘나의 조국’은 러시아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죠. 동시에 미국이기도 합니다. 이민을 와서 두번째로 태어난 곳이니까요. 그리고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살아온 프랑스 역시 ‘마 파트리(Ma Patrie)’, 나의 조국입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더불어, 역사 속 오점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스메타나의 음악은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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