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대 건너뛰기 여행’(skip-gen travel)이 여행업계의 마이크로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 대신 조부모가 10대 손자녀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현 조부모 세대는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한 정보력과 체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은퇴 후 시간적 여유까지 있어 손자녀와의 교류에 적극적이다. 예측을 빗나가는 라이프스타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50대 부장님, 스마트 스토어로 용돈을 버는 고등학생, 주말의 풋살 경기만 기다리고 사는 30대 여성 등 연령·성별·직업 할 것 없이 특정 집단의 전형성이 옅어지고 있다. 이렇듯 주어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소비스타일을 가진 소비자를 ‘옴니보어’라고 한다.
예측 빗나가는 라이프 스타일
고정관념 얽매이지 않는 소비
전형성 탈피한 인생모형 부상
옴니보어(omnivore)란 사전적으로는 잡식성(雜食性)이라는 의미이지만, 파생적으로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사회학에서 옴니보어 개념은 특정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문화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옴니보어들은 기존의 인구학적 기준으로 분류된 집단의 특성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관심에 따라 차별화된 소비의 모습을 보인다.
옴니보어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 청년-중년-노년으로 인생의 과업을 밟아가는 순차적 인생모형이 무너지고, 늘어난 기대수명에 맞추어 새로운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짜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가 공존하며 세대 간 교류의 기회가 많아진 데다 소셜미디어 활용이 일반화되면서, 과거에는 피상적으로만 알 수 있었던 다른 집단의 일상을 온라인을 통해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남성이라도 여성 인플루언서의 게시글을 보며 피부 시술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20대지만 재테크 채널을 보다가 노후 준비를 시작하며, 70대지만 20대 연애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황혼 연애의 팁을 찾기도 한다.
20대 스타트업 대표와 50대 인턴이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내는 스타트업 사례가 종종 눈에 띄는가 하면, 대기업에서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리버스 멘토링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신입사원의 나이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 또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시니어를 위한 대학과정이 정착했다.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은 50세 이상인 시니어를 위해 마련된 1년제 대학 과정을 운영한다. 대학생과 같이 주 5일 강의를 수강할 수 있으며 논문 작성 등 이수 절차를 갖추고 있다. 메이지 대학은 60세 이상 정년퇴직자들을 위한 ‘시니어 전용 입시’를 만들기도 했다.
나이가 어리면 미래에 대한 대비에 소홀할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10대, 20대는 마라탕과 탕후루 같은 자극적인 음식만을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건강관리에도 철저하다. 노화를 늦추는 생활습관을 강조하는 ‘저속노화’ 열풍이 불면서 당뇨 환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혈당 스파이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가 하면, 수면법이나 영양제가 필수 관심사가 되었다. 이들은 ‘안티 에이징’에 앞서, 젊을 때부터 노화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슬로우 에이징’을 추구한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개인의 일생을 바라보는 정형적 틀이 바뀌고 있다. 경영 석학 마우로 기옌 교수는 인생의 시기마다 적합한 생애 과업과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순차적 인생모형’(sequential model of life)이 이제 시대에 뒤처진 사고방식이 되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인류는 삶을 네 단계로 쪼개어 성인기 이전에는 놀고 배우며, 청년이 된 후에는 열심히 일하고, 중년에 가족을 부양하고, 노년에 은퇴하여 삶을 마감하는 생애 모형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인류가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되면서 노년기가 비약적으로 길어졌다.
인생 시계가 늦어진 것에 이어 사회환경도 달라졌다. 특히 기술발전의 영향으로 인생 초기에 배운 것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게 되었다. 배움의 시기와 노동의 시기를 구분 짓지 않고, 10대에도 창업하고 중년에도 학습하는 옴니보어 라이프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필요해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중년·남성·직장인 같은 집단 특성보다 어떤 알고리즘에 노출되는가에 따라 생각이나 취향, 행동양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시장도 조직도 더 이상 전형적이지 않다. 이러한 옴니보어 시장에서 타깃 접근은 가치·취향·기분·상황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통한 개별적 접근이 필요하며, 최대한 좁고 날카로워야 한다. 단단한 얼음을 깨는 것은 커다란 해머가 아니라 끝이 뾰족한 바늘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