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지역에서 최악의 대형 산불이 나 8일(현지시간) 현재 최소 5명이 숨지고 십수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순간 최대 속도 160㎞/h의 국지성 돌풍 ‘샌타 애나’를 타고 산불이 급속히 번지는 데다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LA에는 한인 약 23만 명이 몰려 있어 교민 피해도 우려된다.
이날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LA 서부 해안가 부촌인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데 이어 이튼, 허스트, 우들리 등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났다. 산불은 강풍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통제 불능 수준이 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여의도 면적(2.9㎦)의 약 70배인 202㎦를 집어삼켜 최소 1000여 동의 건물이 불에 탔고 15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약 150만 가구에 정전이 발생해 지역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LA 카운티의 로버트 루나 보안관은 “이번 산불로 최소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배우 마크 해밀 “말리부서 급히 대피”
해안가 부촌에서 난 산불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은 영화배우 마크 해밀 등 상당수 셀럽들도 집이 불에 타거나 대피해야 했다. AP는 “제임스 우즈(배우), 맨디 무어(가수 겸 배우) 등 여러 유명인 집이 불타고 스타들이 대피했다”며 “배우 캐리 엘위스, 패리스 힐튼도 8일 화재로 집을 잃었다고 밝힌 스타들 중 하나”라고 전했다.
산불이 처음 발생한 팰리세이즈 지역은 해안을 따라 할리우드 스타 등 명사들의 고급 저택이 즐비한 곳이다. 마크 해밀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말리부(캘리포니아 해변가 부촌)에서 급히 빠져나왔다”고 알렸다. 맨디 무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타데나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아이들,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했다고 전했다.
LA 산불로 할리우드 시상식과 영화 시사회 등 각종 행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기도 했다. 오는 17일로 예정됐던 제97회 아카데미상 후보 발표는 이틀 뒤인 19일로 연기됐다.
돌풍에 물 부족…사실상 통제 불능
하지만 산불 진압률은 사실상 0%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소방 당국은 128~160㎞/h에 달했던 돌풍이 80~95㎞/h로 다소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데다 소화전 물이 고갈되면서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앤서니 마론 LA 카운티 소방서장은 “한두 건의 큰 산불에는 대비가 됐지만, 네 건은 아니다”며 화재 대응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산불 확산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샌타 애나 돌풍은 건조한 가을철 이 지역에 대형 산불을 퍼뜨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만 1월은 건기가 아니어서 화재 발생 비율이 낮았는데 올해는 캘리포니아 남부 일대에 그간 비가 내리지 않아 극도로 건조한 상태였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마침 LA를 방문 중이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LA 산타모니카 소방서를 방문해 산불 현황을 보고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를 중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국방부에 추가 소방 인력과 자원을 신속히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모든 게 뉴섬 주지사 탓”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산불을 바이든 대통령과 뉴섬 주지사 탓으로 돌리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군 중 하나다.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이번 화재는 금액으로 따지면 미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기록될 수 있다”며 “이번 사태는 바이든ㆍ뉴스컴(뉴섬 주지사를 ‘Newscum’으로 조롱하며 부른 별명) 듀오의 총체적인 무능과 잘못된 관리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또 “뉴섬은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에 매일 물을 흘려보내는 ‘물 복원 선언’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며 “지금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모든 것은 뉴섬 책임이다”고 공격했다. 뉴섬 주지사가 ‘스멜트(smelt)’라 불리는 어종 보호를 이유로 물 공급량을 제한하면서 산불 진화에 필요한 수량 확보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무엇보다 소화전과 소방용 비행기에 공급할 물이 없다. 진짜 재앙”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뉴섬 주지사실은 SNS를 통해 “물 복원 선언과 같은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전한 허구”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