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위기를 맞았다. 집권당인 자민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총재 선거를 다시 하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이시바 총리가 올봄 자민당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건넸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지면서다.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사건이 채 수습되지 않은 가운데 이시바 총리마저 부적절한 ‘상품권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이시바 정권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사히신문과 공영방송 NHK·교도통신 등은 지난 3월 3일 복수의 자민당 의원들이 이시바 총리 비서로부터 1인당 10만엔(약 98만원)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고 13일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 측이 의원들에게 제공한 상품권은 총 백수십만엔 대로 전해졌다. 상품권을 받은 의원들은 모두 총리관저에서 열린 이시바 총리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초선의원들로, 대형 백화점 쇼핑백에 든 상품권을 이시바 총리 측으로부터 “오늘의 선물”이란 설명과 함께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는 “이날 저녁 간담회에는 초선 의원 15명이 참석했으며 상품권 총액은 백수십만엔 상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NHK는 상품권을 받은 의원 전원이 되돌려줬다고 보도했다. 이 가운데 일부 의원은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을 언급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상품권을 반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NHK에 “위법성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나섰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시바 총리의 ‘포켓머니’에서 지출한 것으로 위법성은 없다. 정장을 사는데 보태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전달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일본 언론들은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가능성을 지적했다. 총리의 ‘사비’라 할지라도 정치자금규정법은 정치인을 포함한 개인이 정치인 개인에게 현금이나 유가증권 등의 기부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총무성의 유권 해석에 따르면 상품권 역시 정치자금규정법에 적용을 받는 유가증권이라는 것이다. 10만엔의 상품권이 ‘사회 통념상’ 기념품의 범주를 넘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이시바 총리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지지율이 반짝 상승했지만 지난 7~9일 NHK 여론조사에선 지지율(36%)이 전월 대비 8%포인트 하락한 상황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오랜 자민당의 비주류로, 올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보수파를 중심으로 “총재 선거를 다시 하자”는 발언까지 나온 상황에서 불거진 대형 악재인 셈이다.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총리 교체는 물론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참패하는 등 위기를 맞은 만큼 이번 사건은 이시바 정권에도 타격을 미칠 수 있다. 아사히는 자민 파벌의 정치자금 파티를 둘러싼 비자금 문제를 계기로 퇴진한 기시다 정권의 뒤를 이어 이시바 총리가 지난해 10월에 취임한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국회에서 기업·단체기부금에 대해서 여야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자신에게 ‘정치와 돈’ 문제가 생기게 돼 총리가 책임을 추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품권 보도가 전해지자 야당은 즉각 비판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관계자는 “상품권을 준 총리 측도 받은 자민당 의원 측도 언어도단”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