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플랫폼 이코노미, AI 시대, 그리고 중복규제

2025-03-04

현대사회가 복잡화, 다변화, 전문화되면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그만큼 다층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제반 현상을 규율하려는 입법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규제의 중첩을 가져온다.

서로 다른 목적의 정당한 규제가 중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내용의 규제를 거듭 부과하는 불합리한 중복규제, 즉 이중규제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는 적법절차원칙, 과잉금지원칙과 같은 헌법원리들과 충돌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그간의 수많은 비판과 규제개혁 논의에도 불합리한 중복규제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이루어져 있다. 정부 내에서의 정보 분산,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과잉 집행과 범정부 차원의 일관성 결여, 부처간 갈등 및 관할 경쟁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포지티브 방식의 경성 규제와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선호하는 규제 친화적 환경으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중복규제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AI)의 시대에서 국내 산업의 육성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핵심 축이 되었고, AI 기술은 생산과 소비, 산업 전반에 걸쳐 플랫폼 생태계 구축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에 관한 규제와 육성의 관점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향후 수십년 운명을 좌우할 핵심 과제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플랫폼은 개방적이고, AI는 범용적이다. 디지털 플랫폼과 AI의 발전은 여러 부처의 기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간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중·삼중규제를 피하기 어렵다. 디지털 플랫폼에 대해서는 공정위와 방통위에서 경쟁적으로 각자 법 제정을 주도한 바 있고, 최근에는 문화산업공정유통법과 같은 옥상옥 이중규제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AI기본법은 과기정통부 소관으로 통과되었지만, 콘텐츠, 전자상거래, 자율주행, 금융, 의료제약, 물류 등 여러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AI의 특징상 여러 부처별 규제가 중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섣부른 규제 중복이 일어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플랫폼·AI 기업들을 옥죄는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중복규제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규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최선의 대책은 불필요한 규제를 함부로 도입하지 않는 것이며, 여기서 규제의 실증성이 특히 요구된다. 규제 도입 전에 규제비용(규제로 인한 사회 전체의 기회비용 포함)과 규제편익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고, 규제영향평가 회피와 절차 간소화라는 명분으로 의원 입법으로 우회하는 관행도 시정되어야 한다.

입법부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대한상의의 자료에 따르면, 16대에서 20대까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10배 이상 증가해 2만4141건에 달하였는데, 우리보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큰 독일(806건), 프랑스(330건)와는 비교가 무색하고, 미국(1만5242건)조차도 한참 상회하는 수치다. 21대 국회에서도 무려 2만5858건의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정작 가결율은 5.9%에 불과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발의 건수라는 형식적 기준만으로 의원 활동을 평가하는 것도 입법의 남용을 부추기는 것 같다. 그러나 숫자에만 집착한 법안 발의는 불합리한 과잉·중복규제를 잉태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시장의 경쟁을 신뢰하고 시장의 자정기능에 따른 회복을 지켜보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하이예크가 지적한 것처럼, 경쟁보다 더 열등한 방법이 경쟁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이승민 성균관대 교수 seungminle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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