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체스터 시티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한 다음 날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일간지에 축하 광고를 실었죠. 고객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변준연 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은 “UAE 원전 수주전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사업에서 최종 사업자로 낙점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바라카 원전은 UAE 사막 한가운데 1.4GW 원자로 4기를 건설·운영하는 사업으로 규모가 200억 달러(약 29조 1000억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수주한 지 15년 이상 지났지만 여전히 단일 사업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플랜트라는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수주전이 본격화한 2009년만 해도 우리나라가 사업을 따낼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제사회에서도 프랑스를 가장 유력한 수주 후보자로 점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UAE와 프랑스의 외교 관계가 긴밀했기 때문이다. 변 전 부사장은 “2009년 2월 입찰 설명회가 열려서 가보니 누구도 한전이 뭐 하는 곳인지 관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기대가 낮다 보니 협상단의 여건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사들은 7성급 호텔에 상주하며 협상을 벌이는데 우리 대표단은 한국에서 아부다비까지 격주에 한 번씩 왕복 1만 4000㎞를 오가며 시간을 허비할 때가 많았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고객 감동 세일즈’였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었던 본사의 엘리베이터와 기도실이 대표 사례다. UAE 측의 방문이 잦던 2009년 당시 본사의 6개 주 엘리베이터 중 하나를 황금색으로 바꿨다. 사업 수주 이후에도 고객 관리는 이어졌다. 한전은 2011~2012년 시즌 맨체스터 시티 FC가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우승하자 다음 날 바로 UAE 최대 일간지에 축하 광고를 내기도 했다. 구단 보유주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왕세제를 겨냥한 ‘감동’ 마케팅이었다.

한전뿐 아니라 민간 협력사와 정부까지 총동원된 ‘원팀 전략’도 수주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한전 고위급 인사들은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청와대와도 접촉하며 역량을 결집했다.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하고 정부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약속한 덕에 최종 수주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한국식 원팀이 효과를 보자 바라카에서 고배를 마신 프랑스와 일본은 한전 모델을 벤치마킹해 각각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일본 국제원자력개발주식회사(JINED) 중심의 수직화된 수출 체계로 개편하기도 했다.
변 전 부사장은 원전 수출은 단순히 기술이나 설비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정치·문화·국방이 총망라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변 전 부사장은 “원전 세일즈에서 우리 원자로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는 것은 하수”라며 “상대 측은 이미 기술 분석은 끝낸 상태다. 중요한 것은 패키지 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한국과 UAE 관계는 각별해졌다. 아크부대가 파병되는가 하면 아부다비의 셰이크칼리파병원은 서울대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