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한 시즌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성과가 지금 FC 바르셀로나 앞에 있다. 한지 플릭 감독 체제에서 치른 첫 시즌에서 ‘위기의 명가’ 바르사는 유럽 정상권으로 등극했다. BBC는 16일 “핵심은 단 하나. 바로 ‘젊음’의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위기의 구단, 오히려 기회가 되다 : 한때 파산 위기까지 거론된 바르셀로나는 선수 등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기를 겪었다. 외부 영입은 고사하고 기존 선수들의 처분조차 고민해야 했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 재정 위기는 오히려 ‘유스 출신 자원’들의 성장 무대를 만들어줬다. 이어 플릭은 이를 장기적 리빌딩 전략으로 삼았다. 라민 야말(17), 파우 쿠바르시(18), 알레한드로 발데(21), 마르크 카사도(21) 등 유소년 출신들이 주전으로 자리잡으며 팀의 중심축이 됐다.
■팀을 바꾼 건 ‘믿음’ : 플릭이 바르사에 안긴 첫 번째 변화는 ‘선수단 신뢰 회복’이었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프렌키 더 용, 하피냐 같은 기존 주축은 전임 감독 체제에서 냉대를 받았고, 자존감조차 무너진 상태였다. 플릭은 부임 직후 이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표명했고, 이는 곧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레반도프스키는 리그 25골로 득점 선두에 섰고, 하피냐는 리그 18골로 개인 최다 득점을 경신했다. 더 용은 중원 리더 역할을 완전히 되찾았다. BBC는 “이들의 회복은 단순한 폼의 문제가 아닌, ‘역할’과 ‘존중’의 문제였다”며 “플릭은 이를 정확히 꿰뚫었다”고 분석했다.

■어린 선수들이 진짜 리더가 됐다 : 무엇보다 플릭 체제의 핵심은 젊은 선수들이 팀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플릭은 그들에게 책임을 주었고, 그 신뢰는 고스란히 경기력으로 돌아왔다. 라민 야말은 상징적 존재다.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100경기 이상을 뛴 최연소 선수로 등극한 야말은 이제는 공격 전개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자원이다. 플릭은 매 경기를 뛰고 싶어 하는 야망을 존중하면서도, ‘수비가담’을 소홀히 하면 과감히 벤치로 보낸다. 카리스마와 유연함이 공존하는 지도력이다. 또한 플릭은 라커룸 음악 선곡까지 젊은 선수들에게 맡기며, ‘분위기 주도권’을 넘겼다. 이는 그저 상징적 조치가 아니라, 심리적 리더십 전환을 의미한다.
■최소한 영입, 최대한 성과 : 이적시장에서도 플릭은 절제된 접근을 택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다니 올모와 파우 비토르 단 두 명만 영입했고, 겨울엔 추가 영입이 없었다. 하지만 시즌 중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벤피카전 5-4 대역전승을 통해 베스트 라인업을 확립했다. 이니고 마르티네스(33)는 고속 수비 라인이라는 낯선 전술에 투입됐지만, 플릭의 신뢰에 보답하며 중심을 잡았다. 그는 스스로 ‘느린 수비수’임을 인정하면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 역할에 충실했고, 이는 팀 수비 전환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규율과 디테일, 독일식 완성주의 : 플릭은 바르사의 ‘자유분방한 전통’ 속에서도 독일식 규율을 심었다. 지각엔 예외가 없었다. 줄 쿤데는 미팅에 세 번 지각해 벤치로 밀렸고, 이냐키 페냐는 수페르코파 준결승에서 제외됐다. 심지어 선수들의 원정 복장까지 통일했다. 과거엔 디자이너 브랜드 옷으로 개성을 표현한 선수들이 이제는 감독 포함 전원이 클럽 유니폼을 입는다. ‘바르셀로나다움’은 유지하되, 팀의 기준은 플릭이 설정한다는 신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챔피언 :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선 4강 탈락했지만, 바르셀로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플릭은 과감한 하이라인과 전방 압박, 주도적인 공격 전개라는 팀 철학을 이식했다. 다만 리스크도 분명하다.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4경기 24실점. 유럽 최고 수준과 비교하면 수비 조직력은 개선이 필요하다. 플릭은 다음 시즌 ‘경기 장악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미 공격력은 입증됐다. 이제는 리드를 지키며 이기는 힘을 기를 때다.
■계약은 1년 남았다… 장기 계약은 관심 없다 : 시즌 종료 시 플릭은 계약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구단은 당연히 재계약을 원한다. 다만 플릭은 장기 계약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유연한 계약 조건 속에서 팀에 집중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플릭은 ‘감독이 전부를 통제하려 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지도자다. 그가 만든 바르셀로나는 플랜은 감독이 만들되, 실현은 선수들이 주도하는 구조다. BBC는 “이제 막 첫 발을 뗀 이 젊은 팀이 유럽 정상을 다시 정복할 수 있을까”며 “플릭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