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반도체와 의약품, 구리 등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관련 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발표할 관세율이나 부과 시기 등을 살피며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관세율, 시기 모두 불확실성이 너무 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미 상부무의 반도체 관세 부과 관련 조사가 끝나는 이달 말 직후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반도체 전체 공급망을 미국 안에 두고 통제하며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를 꺾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현지에 파운드리 공장과 반도체 패키징 생산 기지를 짓고 있지만 메모리 생산 시설은 없다. 반도체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메모리 생산 기지마저 미국에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반도체 가격이 비싸지면 미국의 ‘AI 레이스’를 이끄는 빅테크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중국의 AI 굴기를 견제하려다 오히려 자국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구리에 대해서도 50%의 품목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이 수입하는 구리 중 한국산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조치로 구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산업계 전체에 공급망 불안이 확산할 수 있다. 특히 이미 품목관세가 적용된 자동차 업계는 원자재 가격 인상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많게는 4배 이상의 구리가 사용된다. 원자재 값은 신차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상이 걸린 것은 제약·바이오 업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의약품에 대해 “매우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며 “예를 들어 200%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최대 수출국으로 대미 수출은 지난해 기준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 수준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200% 관세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그 절반이나 50% 수준만 되어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민관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