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한덕수②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이하 경칭 생략)에 대해 내린 평가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A가 최근 ‘대선주자 탐구’ 취재팀에 전해준 말이다.
요즘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양종’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좋은 종자’라는 뜻이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타고 난 품성이 우수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은 한덕수를 좋아했다. 능력 있는 관료로선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그에게 잇따라 중책을 맡긴 이유다.
‘관료 한덕수’라는 종자는 김대중 정부 때 꽃을 피웠고, 노무현 정부 때 결실을 보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신설한 통상교섭본부의 본부장(장관급)으로 당시 49세인 한덕수를 발탁했고 이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으로 소중하게 썼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그를 귀하게 여겼다. ‘한·중 마늘 협상’(2002년)으로 인한 여론 악화에 책임을 지고 공직을 떠났던 한덕수를 다시 정부로 불러 국무조정실장이란 중책을 맡겼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 관료의 꿈인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무총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한덕수는 노무현 정부의 후계자이자 적자임을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에선 공직을 하나도 맡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정부가 종료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임 정부 사람들이 모여 회동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A에 따르면 그때 모인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그 이유에 대한 힌트가 나왔다.
누군가 꺼낸 혼잣말에 또 다른 누군가가 화답했다. 비아냥이었다.
그 양반? 어제는 노무현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다른 이의 사람이 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