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독재자가 공통적으로 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노래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다. 파급력이 빠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수하의 선동가 괴벨스도 적성국 미국의 재즈가 독일에 퍼져 막을 수 없게 되자 가짜 재즈밴드를 만들어 나치 사상을 전파했다. 우리나라도 독재 시절에 이런 관제가요(官製歌謠)가 배포됐다.
1960년대부터 등장한 관제가요는 ‘건전가요’라는 명목으로 음반에 강제적으로 수록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만들어진 ‘아! 대한민국’은 의외로 히트까지 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 대한민국’은 1983년 발표된 노래로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우승을 하며 무명의 정수라를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도 부르고 싶지 않은 곡이었다. 감정도 없이 오로지 국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가수는 없을 것이다.
박건호는 시인으로 데뷔한 후 작사가로 전향해 이용 ‘잊혀진 계절’, 조용필 ‘모나리자’, 나미 ‘빙글빙글’ 등의 히트곡을 쓴 인물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음반 기획도 함께 하면서 가수를 키워내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제5공화국 군사정권이 막 들어섰고 시민과 대학생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정부는 국민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벤트성 정책을 남발했는데 그중 하나가 서울올림픽 개최였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정부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박건호에게 노래를 의뢰했다. 그게 바로 ‘아! 대한민국’이다.
박건호는 앞서 가수 김현준과 민해경에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를 줬고, 이 곡이 히트하자 ‘아! 대한민국’도 함께 부르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민해경이 일본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현준 홀로 부르는 것은 탐탁해하지 않았다. 김현준은 1980년 ‘순자야 문 열어라’는 노래를 불렀다가 영부인 이름인 ‘순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활동을 못한 적 이 있었다.
결국 ‘아! 대한민국’은 박건호와 인연이 있던 무명의 정수라에게 돌아갔다. 당시 정부는 초·중·고교에서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르도록 하달했고, 방송에서도 ‘아! 대한민국’을 연신 틀어 귀에 박히게 했다. 노래는 이렇게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