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금융 업계 전반에 스며들면서 신용 평가와 대출 심사 체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금융 거래 이력·카드 사용량·연체 정보 등 정형화된 데이터를 통해 신용도를 평가했지만, 이제는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비롯한 AI 기술을 활용해 훨씬 더 폭넓은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대출 심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AI가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완점을 찾아내고, 새로운 신용 평가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등 AI 활용 범위는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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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부터 쇼핑 패턴까지...신용 등급 산출에 쓰이는 비정형 데이터
우리나라 대표 신용 평가사는 나이스평가정보(NICE)와 코리아크레딧뷰로(KCB)입니다. 이들은 금융기관·카드사·통신사 등에서 받은 데이터를 종합해 개인의 신용 등급을 산출합니다. 주로 상환 이력이나 부채 수준·신용 거래 기간·비금융 항목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이런 전통적 방식만으로는 ‘신파일러(Thin Filer)’로 불리는 금융 이력 부족자나 소상공인·프리랜서 등 기존 체계 밖에 있는 이들의 신용도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AI 기반 신용평가 모델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신용도와 리스크를 판단합니다. 소셜 미디어 활동·휴대전화 이용 기록·온라인 쇼핑 패턴·위치 정보 등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하고, 과거에 발견하기 어려웠던 변수 간 상호작용까지 포착할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물론 추론형 AI까지 AI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알고리즘 개발 속도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및 활용 방안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금융권은 오래전부터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러 내부 평가 모형을 보유·운용해 왔는데, AI 기술이 도입되면서 대출 심사와 신용평가 방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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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해 더욱 정교하게 고객 리스크를 측정함으로써 대출 승인 과정을 간소화하고 금융 포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특히 인터넷 전문은행과 핀테크 기업이 이 분야를 선도하며, 전통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도 본격적으로 AI 모델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 이력 부족해도 대출된다...AI가 쏘아 올린 포용 금융
먼저 국내에서 AI 신용 평가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인터넷뱅크입니다. 카카오뱅크는 모바일 플랫폼인 카카오톡과 카카오페이 등을 통해 축적된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일부 반영함으로써, 기존 신용등급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고객 특성을 포착합니다. 토스뱅크 역시 토스 플랫폼에 쌓인 소액 송금·투자 내역·카드 연동 현황 등 다양한 활동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 이력이 부족한 이들도 대출 대상으로 포용할 수 있도록 평가 모델을 설계합니다.
해외에서도 AI 기반 신용 평가를 선도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늘고 있습니다. 업스타트(Upstart)는 전통적인 FICO 점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력·경력·시험 점수 등 비정형 데이터를 폭넓게 반영해 개인의 상환 능력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부실률 관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피코(FICO) 역시 단순 점수 산정에 그치지 않고, AI 기술을 접목해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오랜 노하우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파트너 금융기관에 솔루션을 공급해 신용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BNPL(지금 사고 나중에 갚기, Buy Now Pay Later) 선도 기업 어펌(Affirm)은 온라인 구매·결제 데이터, SNS 활동, 위치정보 등 방대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AI 모델에 투입해 개별 고객의 할부 결제 한도와 금리를 산출합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즉각적인 할부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어펌은 상환 리스크를 정교하게 관리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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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국내외 다양한 사례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데이터 다양성’과 ‘정교한 알고리즘’입니다. 그러나 모델이 복잡해질수록 알고리즘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차별적 요소나 편향이 존재할 때 이를 빠르게 수정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따라서 알고리즘의 판단 과정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AI의 투명성을 높이고 신용 평가 점수에 대한 신뢰도를 한층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가상 데이터 활용해 민감한 개인정보 사용 막는다
국내·외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이 선보이는 AI 신용 평가 사례는 향후 금융 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이미 모바일 중심의 생활 패턴이 자리 잡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정확한 대출 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한편, 실제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르기 때문에 AI를 통해 이를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제 사용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 평가 모델과 알고리즘을 개발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현하기 어렵거나 개인정보 문제로 인해 데이터 확보가 제한될 때가 많습니다. 이때 합성 데이터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합성 데이터는 실제 데이터를 모방해 AI가 생성한 것으로, 필요한 추가 데이터나 특정 사용자 집단을 가상으로 만들어 신용 평가 모델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신용 평가 분야에서는 실제 고객 집단에서 빈도가 매우 낮은 특이 케이스나 극단 값을 모델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은데, 합성 데이터를 이용하면 이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낮은 확률로 발생하는 특정 신용 패턴이나 연체 양상을 충분히 생성해 모델을 추가로 학습시켜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합성 데이터는 실제 데이터의 확률 분포와 상관관계만 모사하기 때문에, 민감한 개인정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도 모델을 고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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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합성 데이터가 실제 환경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으면 왜곡된 편향이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생성된 합성 데이터가 인구통계학적 분포·소득 수준·지역적 특성 등 현실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꼼꼼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합성 데이터를 단순히 신용 점수를 산출하기 위한 용도에 그치지 않고, ‘디지털 트윈’ 개념으로 확장해 실제 사회와 유사한 금융 생태계를 가상 공간에 구축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를 활용하면 대출 상품이나 핀테크 서비스를 개발할 때 가상의 금융 시장에서 미리 수요와 리스크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AI를 활용한 금융 생태계 혁신은 합성 데이터를 통해 구축된 가상의 금융 시장을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과 리스크 관리를 더욱 정교화해 궁극적으로 금융 산업 전체의 효율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