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윤씨(34)는 지난해 12월3일 밤 택시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향했다. 12·3 불법 계엄을 막기 위해서였다. 플랫폼 택시 중에 가장 이용료가 비싼 ‘블랙’ 택시를 탔다. 돈보다 계엄을 막는 게 급했다. 이씨는 그곳에 도착해 자신과 비슷한 여성들을 만났다. 이씨는 “광장에서 그들을 만난 것이 광장에 계속 나올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본사에서 이씨와 신지현씨(28), 최윤주씨(30), 엄지효씨(32)를 만났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부터 헌재가 대통평 파면을 결정한 지난 4월4일까지 123일 동안 함께 광장을 만들었고, 지켰고, 기록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기록을 <이토록 평범한 내가 광장의 빛을 만들 때까지>(롤링 다이스)란 책으로 냈다. 책에는 이들 외에도 5명이 더 참여했다.

신씨는 지난해 12월7일 서울 여의도 광장을 잊지 못한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1차 표결를 앞둔 날이었다. 신씨는 SNS로 알게 된 3명과 함께 응원봉 시위를 준비했다. “얼마나 모일지 가늠할 수 없어 불안했”는데 그날 여의도 광장에는 200여명이 응원봉을 가지고 모였다. 신씨는 “생판 남들인데,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응원봉 시위는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어 시작했다.” 광장이 재미있으면 한명이라도 더 광장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도 떠올랐다. 신씨는 경기도 안산 출신이다. 희생자 중 신씨의 은사도 있었다. 신씨는 “그때는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하며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무력했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며 “아직도 선생님이 농담하시던 모습,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손길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만화·음악 평론을 하는 최씨는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를 막고 싶어 광장을 향했다. 최씨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참사에 무뎌지는 내 자신을 발견해 참담했는데, 대통령은 계엄까지 선포했다”며 “이제 이런 일까지 벌이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위험관리 방식이 바뀌고, 그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위험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며 “불을 끄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엄씨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광장을 향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접점을 줄인 것이 윤석열 세력을 키우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다. 엄씨는 “우리는 안 맞는다는 생각, 나와 다른 소리를 하면 아예 안보는 태도보다 ‘이야기를 섞어보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광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25년의 광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던 2016~2017년의 광장과 달랐다고 했다. 2025년 집회에서는 타인을 더욱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씨는 “그때는 대통령이 여성이라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혐오 표현이 나왔었다”며 “이번에는 여성들이 주축이 되면서 그런 표현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탄핵 집회에 혐오나 배제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여의도에서 벌어진 집회에선 한 여성이 연단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자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의 광장은 이를 더는 허용하지 않았다. 엄씨는 “이번엔 (혐오 표현은) 광장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명확한 선이 생겼다”며 “그게 페미니스트, 장애인,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더 명확하게 나오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단에 선 사람들은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장애, 취미, 가족관계 등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밝힌 뒤 발언을 시작하기도 했다.
광장은 다른 시민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최씨는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일상의 모습들을 그동안은 공기처럼 여겼다. 근데 이게 실체가 있는 거구나, 다른 시민들은 이런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던 거 같다”며 “광장에서 발언을 들을 때 타인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정치과몰입’이라고 느꼈던 노동조합과 장애인단체 등의 활동가에 대한 오해도 풀었다.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도 쉬워졌다. 신씨는 “광장에서 한 어르신이 ‘퀴어가 뭔지 모르겠지만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며 “우리는 완벽히 남이고 모르는 사람들인데, 썩 괜찮은 미래와 희망을 그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야’가 됐다”고 말했다.
나와 다른 세대도 이해하게 됐다. 신씨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에 미안해하셨다”며 “그때 어른들에게 ‘당신들이 지켜온 민주주의 우리가 지키겠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광장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 부채감을 정치적으로 승화한 공간이었다”며 “그래서 우리가 서로 유기적으로 더 연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폭력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여성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소수자에 대한 폭력·혐오의 강도가 커졌고, 피해자로서 공감해 광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소수나, 장애인 등 20~30대 여성만큼이나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광장에 몰려나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이 계속 발생하며 여성들은 우울감,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상황이었다”며 “누적된 폭력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대통령은 폭력의 끝판인 계엄을 선포했고 여성들이 광장에 나가게 된 것은 당연했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광장에 나섰던 경험도 이번에 여성들이 모이는데 동력이 됐다. 최씨는 “페미니즘 리부트(2015년 이후 ‘미투 운동’ 등으로 다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를 통해 개인의 상처가 사실은 굉장히 사회적이라는 것, 그 상처는 사회 운동과 연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화는 완벽하게 단일한 것이 아니라 ‘얼룩덜룩한 풍경’에 가깝다”고 했다. 광장에서 다른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마다 처지도 경험도 달라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 있고, 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들은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시민들에 대한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엄씨는 “개인적으로 이 정권에서는 혐오와 차별의 흐름이 거세게 흘렀고, 윤석열은 그런 흐름을 상징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광장처럼 모두에게 열린 정치의 공간이 우리 일상에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씨와 이씨는 “사회가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대방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책잡히지 않으려 자신을 더 숨기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발언들이 나올 수 없다. 신씨도 “두려움을 좀 내려놓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