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도 회장이 결정···거수기 금융지주 이사회 여전

2025-02-04

일부 금융지주들의 이사회가 M&A(인수·합병)를 비롯한 중요 의사 결정에서 제 역할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이른바 거수기 이사회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금감원의 이번 정기 검사에서도 '거수기'가 여전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4일 발표한 '2024년 지주-은행 등 주요 검사결과'에 따르면 우리·KB 등 일부 금융지주는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A금융지주 회장은 자회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했다.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개최해 리스크관리위원회 심의 내용이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A지주의 내규에 따르면 M&A 등 중요 경영사항 추진시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고, 이 경우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A지주는 자회사 편입 관련 인허가권을 가진 금융당국이 인허가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이 주식매매계약에 포함되었는데도 공식 이사회 석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과거 A지주가 여타 자회사를 인수할 때는 인허가 실패 시 계약금을 반환받는 조건이었다.

또한 B은행은 해외 자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결정시 송금일 당일 아침에 이사회에 자금 송금 필요성만 우선 보고해 자금지원을 사실상 선결정했다.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사후적'으로 개최해 국가별 익스포져 한도를 상향하고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해외로 송금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자금 송금 관련 리스크에 대해 리스크관리위원회 차원의 검토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B은행의 자회사가 소재한 국가는 2개월 전에 내부 기준상 요주의 국가로 분류돼 국가 리스크 한도가 축소되었는데도 자금송금을 하기 위해 한도가 상향됐다.

또한 A지주와 은행 모두 지난해 '기업금융확대'라는 경영목표를 수립했으나 이사회 보고 없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 당초 지주는 기업금융 시장지위 제고를 위해 연결 총자산 6%를 성장시키고, 은행은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출을 각각 30%, 10%씩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A은행은 2024년 3분기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자본비율 하락 방어를 위해 이사회 보고·논의 없이 기업대출 감축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성과평가지표(KPI)를 수정했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을 축소해 위험가중자산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자본비율을 제고한 셈이다.

A지주는 주요 자회사인 은행 경영진이 지주 경영계획과 상치되도록 영업목표를 임의 변경했지만 이를 통제하지 못해 은행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이 훼손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와 별개로 A은행은 고위험 부실채권(NPL)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계열사(자본금 200억원)에 계열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특수목적회사(SPC)가 발행한 NPL 후순위채권 등을 담보로 약 3500억원의 대출을 취급했다.

계열사는 대출자금으로 NPL 등을 추가 매입하고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다시 대출을 받는 순환 구조를 통해 외형을 확대했지만 그룹내 신용리스크 및 부실전이 위험이 동반 상승했다. 또한 계열사는 연초 지주가 부여한 리스크 유형별 허용한도를 대폭 초과했으나 지주는 이에 대해 별도 조치하지 않는 등 지주 차원의 실질적 리스크관리가 미흡했다.

B은행은 자회사의 건전성 지표 개선을 위해 자회사의 부실자산을 은행이 사실상 지배하는 SPC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해당 SPC가 발행한 사모사채(매각대금)에 대해 지급보증 6400억원 및 한도성 대출 653억원을 제공하는 등 우회적으로 자회사를 지원했다. 이로 인해 자회사의 부실채권 위험을 은행이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돼 신용리스크 및 부실전이 위험이 동반 상승했다.

C지주와 은행은 2022년 금감원 정기검사 시 은행이 지주의 대주주 특수관계인인 모 재단에 222억원을 지정기부하는 방식으로 대주주 목적사업을 우회 지원했다. 하지만 2024년 검사에서도 자회사의 기부금 관련 지주 차원의 통제절차가 미흡한 것으로 확인됐다.

C지주는 대주주 및 계열사 여신을 조기경보 등 여신 사후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재무위험 등 영향 분석 없이 대주주 지원성 사업을 영위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우회적인 대주주 및 계열사 지원 행태를 지속해왔다.

박충현 금감원 은행담당 부원장보는 "금융지주의 의사결정 절차와 관련해 법규 위반인지 여부는 따져봐야 될 것 같다"며 "금감원은 2023년부터 은행권과 지배구조와 관련해 계속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사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충분한 설립 목적을 갖고 있다"며 "목적을 어기고 단순히 거쳐가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산업 발전에도 굉장히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사회가 회장·경영진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맞서 감시·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통해 제시된 원칙을 중심으로 확인·평가할 계획이다. 특히 영업부서-리스크담당부서-리스크관리위원회-이사회로 이어지는 전사적 리스크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중점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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