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고 꼼꼼하게, 피렌체에 응축된 아름다움을 탐구하다[BOOK]

2025-12-19

피렌체 비가

문광훈 지음

풍월당

어떤 대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왜 아름다운가"를 설명하는 건 어렵다. 직관을 넘은 통찰과 논리를 갖춰야 그 아름다움이 왜 아름다운지 말과 글로 풀어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피렌체 비가』의 출간은 반갑다. 중세 암흑기를 딛고 화려하게 피어난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이 응축된 도시, 피렌체로 차분히 안내한다.

이탈리아 중부에 자리한 이 도시가 아름답다는 건 가보지 않아도 안다. 198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 신청서엔 "유명한 예술작품이 세계에서 최대한으로 집적되어 있"다며 도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증명하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라고 한다(40쪽). 실제로 피렌체 도시 중심부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인정됐다.

인문학자인 저자는 피렌체 체류가 오랜 꿈이었다고 고백한다. 꿈의 공기를 마시는 그의 호흡은 급하지 않되 깊고, 아르노 강가를 거니는 발걸음은 느긋하되 꼼꼼하다. 역사와 지리, 문화와 인물을 두루 엮어낸 데다 700쪽 넘는 벽돌책이지만, 읽는 호흡과 속도가 편안하다. '르네상스 도시기행'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저자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산 마르코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역사의 뿌리와 학술적 탐구, 인문학적 해석으로 풀어낸다.

이런 식이다. 산타 트리니타 다리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먼저 그 다리의 건축사 곡절을 팩트로 찬찬히 짚고, 다리의 조형미로 넘어간다. 완만한 아치 곡선의 비율을 수치와 건축의 관점으로 분석한 뒤 이런 해석을 붙인다. "우아함이란 그런 '유연한 원칙의 다른 이름이다"(52쪽). 그런가 하면 마사초의 회화 '마비된 자의 치유와 타비타의 일깨움'을 탐미하면서는 전면의 주인공들뿐 아니라 뒤에 배치된 건물에 걸린 생활을 발견한다(179쪽). 창가에 널어 놓은 이불과 새장 등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일별조차 어려운 작은 아름다움에도 눈길을 두는 태도가 반갑다.

참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 AI가 아직은 범접불가능한 묵직한 콘텐트의 가치를 이 책은 고요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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