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추를 매일같이 수확·납품해야 하는데 일손을 구할 수 없어 미칠 지경입니다.”
최근 정부당국이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단속을 강화하면서 그 여파가 영농철을 앞둔 농민들에게 미치고 있다.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 현실상 불법체류자를 고용해 농작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출하 작업이 한창인 경기지역 시설원예농가들의 어려움이 크다. 일손을 구하지 못해 수확 시기를 놓쳐 농산물의 상품성이 떨어지고 납품 지연으로 거래처의 신뢰도도 하락하는 등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시설하우스에서 상추·케일 등을 생산하는 이모씨(72·경기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는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최근 일주일 새 5명이나 단속반에 잡혔다”며 “농사를 포기하란 말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씨는 “이웃에게 사정해 일손을 구하고 식구들을 동원해 버티고 있지만 환장할 노릇”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웃농가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단속당한 소식이 매일같이 전해지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데 인력난까지 가중돼 임금이 상승하게 될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만9600㎡(1만2000평) 시설하우스에서 쑥갓 등을 생산하는 이용연씨(65·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는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일손부족이 심해지고 웃돈을 주지 않으면 인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차농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울상을 짓고 있다.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고 있는 탓에 외국인 근로자 고용 충족에 필요한 농업경영체 등록조차 할 수 없어서다. 임차 농지의 소유자가 아예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해주지 않아 농업경영체 등록이 원천적으로 막힌 것이다.
4만9500㎡(1만5000평) 시설하우스에서 잎채소를 생산하는 김정일씨(60·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는 “경작지 중 자가 소유인 3960㎡(1200평)만 농업경영체 등록이 돼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지주가 농지를 내놓으라고 할까 봐 임대차 계약서 작성을 함부로 요구할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김씨는 “일손을 많이 빌려야 하는 대농이지만 농업경영체 등록 확인서만을 요구하는 현행 제도에 가로막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자격조차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시설원예·특작 농가는 농업경영체 등록 확인서상 농지규모가 2000㎡(605평) 이상일 때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농민들은 농지 소유자의 비협조로 임대차 계약서를 쓸 수 없는 임차농을 위해 경작 사실 입증을 농산물 판매대금 자료나 농협의 계통출하서 등으로 대체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가 소유 농지가 20∼30% 불과하고 대부분 농지를 임차해 농사짓는 현실을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면적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제도가 농촌의 일손부족 해소를 위해 도입된 만큼 농촌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농지면적 기준을 ‘농업인 충족기준’처럼 1000㎡(300평)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 농민은 “현행 제도는 농업경영체 등록이 녹록지 않은 농촌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면서 “농업경영체 등록 농지 기준 면적을 낮추는 대신 농산물 출하증명서 등으로 보완하면 될 것”이라며 정부에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고양=오현식 기자 hyun2001@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