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중국이 유엔헌장 내 ‘적국조항’을 근거로 일본에 대한 군사적 대응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양국 간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조항이 유엔헌장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이미 사문화됐다는 게 일본 정부 주장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굳이 적국조항을 거론하는 것은 대내외 선전전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유엔헌장은 제2차 세계대전 말엽인 1945년 6월 미국·옛 소련·영국·프랑스·중국 등 연합국 측 주도로 만들어졌다. 서문과 19장 111조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유엔헌장은 적국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 헌장에 서명한 국가와 적대 관계였던 모든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정 나라 이름을 콕 집어 적어둔 것은 아니나,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추축국을 지칭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강제 조치 요건 등을 규정한 제53조와 제107조를 묶어 ‘적국조항’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일반적인 강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 허가가 필요하나, 적국의 침략정책 재개에 대비하는 등 상황은 예외이다.
앞서 주일 중국대사관은 지난 21일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파시즘·군국주의 국가가 다시 침략 정책을 향한 어떤 행동을 취할 경우 중국·프랑스·미국 등 유엔 창설국은 안보리 허가 없이 직접 군사 행동을 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했다. 중국이 군사 조치에 나서도 국제 규범에 따른 정당성이 있다는 취지다.
일본 외무성은 해당 조항이 “이미 사문화된 것이라는 인식”이 이미 오래 전 유엔 결의로 채택됐으며, 이 결의에 중국 측도 찬성했다고 반박했다.
일본 측 근거는 1995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로, 당시 도출된 결의안에는 “적국조항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점을 인식한다”며 “가능한 한 빨리 유엔헌장을 개정해 적국 조항을 삭제하려는 의도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 등이 전후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해 활동하면서 적국 규정이 점차 무의미해졌다는 취지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를 근거로 ‘옛 적국 조항’이란 말을 쓰고 있다.
다만 유엔헌장 개정부터 발효까지는 회원국 총 3분의 2의 찬성과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전원 찬성이 필요해 실제 문구 삭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닛케이는 “유엔의 중국 대표가 대만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임을 인정한 것도 1971년 유엔 총회 결의”라며 “이에 따른 유엔헌장 수정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적국조항의 존재만 주목하고 유엔 결의는 무시한다면, 같은 논리로 대만이 유엔 대표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다.
국제관계 전공인 히가시노 아츠코 쓰쿠바대 교수는 “(적국) 조항이 삭제되지 않았으니 유효하고, 옛 적국에 대해 지금도 무제한으로 무력 침공해도 좋다고 강변한다면 유엔 결의의 의미가 사라진다”며 “중국으로서는 옛 적국 조항을 이용해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일본 내 여론을 분열시킬 수 있다면 정보전에서 일단 성공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해당 조항이 마치 유효한 것처럼 구는 억지를 묵인하면, 중국의 선전 공작에 영향을 받는 유엔 회원국이 나올 수 있다”고 짚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유엔 총회는 적국조항 삭제를 위한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당수토론 도중 본인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질문자가) 사례를 들었기 때문에 그 범위에서 성실하게 답변한 것”이라면서 발언 철회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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