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의 변신은 무죄…요즘 곰탕, ‘힙’해졌다

2025-01-18

맑고 투명한 국물, ‘힙’해진 요즘 곰탕

방짜그릇에 토핑 올려 바에서 세련되게

젊은 입맛 적중, ‘오픈런’ 하는 곰탕집들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푹 고아낸 육수에 고슬고슬 갓 지은 밥 한 그릇을 말아 입에 넣으면 영혼까지 풍족해지는 느낌이다. 한국인의 솔(soul)푸드이자 서민 음식의 대명사인 곰탕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맛도 모습도 먹는 풍경도,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태어난 요즘 ‘핫한’ 곰탕집들.

■뜨끈한 한 그릇, 한국인의 솔푸드

곰탕은 소, 돼지 등의 뼈와 고기, 내장을 오랜 시간 푹 고아 만드는 국물 요리다. 곰탕의 ‘곰’은 ‘뭉그러지도록 익히다’ ‘진액만 남도록 푹 끓이다’라는 뜻. 곰탕의 어원은 조선 성종 20년(1489)에 편찬된 의학서 <구급간이방언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고기를 푹 ‘고은 국’에서 ‘곰국’ ‘곰탕’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몽골에선 가축을 잡아 맹물에 끓여 먹던 음식을 ‘공탕’(空湯)이라 썼는데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부르든 곰탕은 그 이름만 들어도 몸속 어딘가가 뜨끈하게 데워지는 한국인의 솔푸드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갖가지 재료를 넣고 푹 끓인 고깃국은 쇠한 기력을 보하는 영양식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젊은이 망령은 홍두깨로 고치고 늙은이 망령은 곰국으로 고친다’고 했을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설렁탕도 곰탕의 범주에 속하지만 무엇으로 국물을 내는지에 차이가 있다.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등 뼈 위주로 끓이기 때문에 국물의 농도가 진하고 뽀얀 색을 띠지만 곰탕은 주로 살코기와 내장으로 육수를 내 비교적 국물이 맑고 기름지다. 한마디로 뼛국물이냐 고깃국물이냐의 차이다. 곰탕은 간장으로, 설렁탕은 소금으로 간을 하는 점도 다르다.

그렇다고 곰탕과 설렁탕을 무 자르듯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에 따라 곰탕에도 뼈를 넣어 육수를 내는 곳(경상도)이 있고 요즘엔 풍부한 국물맛을 내기 위해 고기와 뼈를 함께 넣어 육수를 우리는 집에 많아졌기 때문이다. 양지나 사태 등 소 국거리로 끓이는 곰탕이 일반적이지만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입맛에 맞춰 돼지를 사용한 돼지곰탕, 노계를 끓여 우려낸 닭곰탕, 소의 내장을 넣은 양곰탕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맑고 투명한 국물, ‘힙’해진 요즘 곰탕

최근 외식업계에서 주목받는 곰탕은 맑은 돼지곰탕이다. ‘돼지곰탕’ 하면 흔히 걸쭉하고 터프한 스타일을 떠올리지만 겉모습부터 확연히 다르다. 고기 기름을 깨끗하게 거른 맑은 국물 스타일로, 국물이 매우 투명해 곰탕을 담은 그릇 안쪽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다. 담백하고도 깔끔한 맛, 다양한 식자재와의 조합으로 새로운 풍미를 더하는 곰탕집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낸다.

곰탕집 분위기도 달라졌다. 뚝배기가 아닌 금빛 방짜그릇(놋그릇)에 담긴 국물에 얇게 저민 고기 고명이 올려져 나오는데, 담음새가 정갈해 특별한 날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도 꽤 어울린다. 상차림이 심플해진 것도 특징. 백반집 스타일로 여러 가지 반찬을 내어놓는 대신 토핑과 수육, 만두 등 셰프의 개성을 살려 힘을 준 메뉴를 ‘킥’으로 선보인다.

맛은 물론 분위기까지 세련된 곰탕집들은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핫플’로 떠오른 몇몇 곰탕집은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수시간 대기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는 이런 곰탕의 인기에 대해 “최근 외식업계의 여러 구조적인 이유로 양식 셰프들이 대중적인 한식에 진출한 사례가 늘어나고, 평양냉면과 같은 맑은 국물에 대한 젊은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아지며 맑은 곰탕의 인기로 이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곰탕집 ‘오픈런’ 해봤니, 줄서는 곰탕집 4

2016년 서울 서교동에서 시작해 미국 뉴욕까지 진출한 ‘옥동식’은 맑은 돼지곰탕 유행의 시초라 할 수 있다. 10석 정도 되는 바 형태 매장에 메뉴는 돼지곰탕(보통 1만1000원, 특 1만6000원)과 김치만두(7000원) 두 가지다. 국내산 버크셔K 흑돼지의 앞다리와 뒷다릿살만 고아 육수를 만드는데 부드러운 수육과 적당한 온도로 데워진 담백한 국물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 일품. 2022년 말 뉴욕 맨해튼에 진출해 오픈 1년 만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뉴욕 요리 8선’에 이름을 올리며 뉴요커들도 줄 서는 돼지곰탕집이 됐다. 곰탕에 소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보리소주 잔술을 3000원에 판매한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안암’은 독특한 개성의 돼지곰탕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2024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린 맛집이다. 맑은 국물에 스페인산 듀록 돼지의 등갈비와 통목살을 수비드해 올리고 육수에는 비름나물과 케일에서 뽑아낸 오일과 청양고추를 더했다. 국물이 초록빛을 띠는 이유는 이 오일 때문이다. 부드럽고 은은한 육향과 향신료의 조화가 신선하면서도 다채로운 풍미를 선사하는데, 여기에 고수를 추가하면 돼지곰탕 한 그릇으로 한식과 동남아식을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수를 넣은 안암국밥이 1만3000원, 얇게 썬 냉제육에 라임을 뿌려 먹는 제육(반 접시 1만1000원)도 함께 맛봐야 할 별미다.

돼지곰탕을 논하는데 부산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자리한 ‘나막집’은 돼지국밥의 도시 부산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른 곳이다. 지난해 처음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부산편’에 이름을 올렸다. 나막집 돼지곰탕의 가장 큰 특징은 육수에서 채소의 비율을 높여 개운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국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90% 채수와 돈사골을 섞어 만든 맑은 곰탕으로, 생강을 넣어 마지막 고기 잡내도 잡았다. 돼지국밥 특유의 거친 향이 없어 누구나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돼지곰탕이 1만원이고, 밥 대신 생면 칼국수를 넣는 고기칼국수(1만1000원)도 인기다.

서울 용산에 본점을 둔 ‘능동미나리’는 맑은 소곰탕 위에 총총 채 썬 미나리를 듬뿍 얹은 미나리곰탕(1만5000원)을 낸다. 매일 도축한 투플러스 한우와 화악산 천연수로 재배한 청도 한재미나리를 사용한다.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치열한 웨이팅이 벌어지는 이유는 독특한 비주얼에만 있지 않다. 소고기 사태와 양지를 넣고 가마솥에서 장시간 끓여낸 수육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여기에 아삭하고 향긋한 미나리가 소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며 맛을 더한다. 능동접시수육(2만9000원), 미나리수육전골(소 4만8000원) 등 술을 부르는 메뉴도 다양해 곰탕 한 그릇 하러 갔다가 얼큰하게 취해 나오는 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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