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정당의 사상적 폐허

2025-04-28

한국 보수 정당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주체가 됐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이어졌고, 2024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기도한 내란 행위로 두 번째 탄핵을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두 사건 모두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중대한 위법 행위로 판단했고, 각각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왜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반복해서 국정농단과 내란의 주역이 되었는가.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 세력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주도하며 분단국가를 세웠고, 박정희 정권 시기 한국형 산업화 모델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는 삼당합당을 통해 민주화운동 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자신을 스스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교’로 규정해왔다.

국민의힘 정강·정책에도 이러한 자기 인식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정강은 “전쟁의 폐허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 경제를 이루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민주화를 성취했다”고 자평하고,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2·28 대구 민주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서사는 두 번에 걸친 헌정 질서 파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근본적인 자기 부정에 직면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 세력으로 자처해온 한국의 보수 정당이 왜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과오를 반복하게 되었는가. 한국 보수 정당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수(補修)’했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내란의 주역이 된 한국 보수 정당이 자당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깊은 성찰이나 반성, 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역설적 장면은 오늘날 한국 보수 정당의 사상적 폐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분단국가 수립과 산업화 주역을 스스로 자부해온 한국 보수 정당은 그 역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사무엘 루벨이 제시한 ‘해 정당(Sun Party)과 달 정당(Moon Party)’의 은유는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1951).

루벨은 미국 정치 체제를 두 유형으로 설명했다. 하나는 시대의 중심 갈등을 내면화하고 이를 대표하며 스스로 정치적 에너지를 생성하는 ‘해 정당’이고 다른 하나는 해 정당이 만들어내는 열기와 반사광에 의존해 빛나는 ‘달 정당’이다. 해 정당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 세력들을 포괄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합적 비전을 제시할 힘을 지닌다. 루벨이 주목한 대표적 해 정당은 1930~1940년대 대공황 속 뉴딜 체제를 주도한 미국 민주당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사회적 계층과 지역 세력을 결집하고 조정하면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적 태양’ 역할을 했다.

반면 반사광에 기대는 달 정당은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결국 주변으로 밀려난다. 산업화 시기,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수많은 저항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가난으로부터 탈피라는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선도했다. 이 시기조차도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의 중심 가치는 반공주의였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민주화 이후 삼당합당을 통해 정치적 헤게모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대표하지 못했고, 새로운 사회 집단을 포용하는 데 실패했다.

기득권 수호에 안주한 다수당은 필연적으로 시대 변화를 흡수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회의 중심 갈등과 괴리되면서 주도권을 잃고, 과거의 영광을 반사하는 달 정당으로 쇠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민주화 이후 한때 헤게모니 지위를 가졌던 한국 보수 정치의 역사는 이 퇴행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주기적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으며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박정희 생가를 찾아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호명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보수 정당은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국정농단의 주역과도 손을 잡고, 심지어는 내란의 주범과도 단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핵심 가치를 잃어버린 권력 보수의 민낯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국정농단과 내란의 주역이 된 한국 보수 정당 앞에 놓인 질문은 엄중하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 정당은 사상적 폐허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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