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재유료화에 대해 “유료화 시점과 방식을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부터 유지되고 있는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무료 입장 정책이 조만간 깨질 상황에 처했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은 지난 2008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5월 1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한 14개 소속 국립박물관 및 미술관의 상설전시관 무료 관람을 실시한다”며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관람은 (이명박)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그 공간과 소장 유물을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문화 향수권 신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무료 관람으로 전환하기 직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입장 요금은 2000원(성인 기준)이었다.
‘공간과 소장 유물을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문화 향수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다’는 전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예산이나 비용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다. 실제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출 예산은 2300억 원 규모인데 거의 모두를 정부 재정에서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재유료화가 부각된 22일 국정감사 논의는 3단계로 진행됐다. 국내 최대 국공립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에 최근 국내외 관람객이 많이 몰리고 인기가 있다는 일부 의원의 지적에서 시작해, 그럼에도 박물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은 별도의 경비 확보를 위해 유료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가 이어졌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입을 맞춘 듯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관객 증가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 의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방문객(10월 20일까지)이 누적 510만 명인데 그중 외국인은 19만 명으로 전체의 3.7%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인 접근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의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구입 예산이 해외 주요 박물관의 10분이 1 수준”이고, 또 다른 의원은 “(방문객 급증에 비해) 학예 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하며 또 일반 관리인력도 증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이른바 질타를 했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직접 언론 보도자료를 내면서 올해 처음으로 연간 방문객이 500만 명을 돌파했다면서 “이는 세계 주요 박물관 가운데 5위 수준”이라고 홍보한 바가 있다.

어려운 사항을 타개할 방안은 결국 예산 확보인 것으로 보인다. 유홍준 관장은 다른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이 위상이 이런 상황에서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소장품 확보와 학예 인력 확충에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 “예산을 기계적으로 몇 % 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면서 “파격적으로 현재 박물관 위상에 맞게 증액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물관 정부예산이 단기적으로 크게 늘기는 어렵다. 재정 당국이 예산을 크게 늘이지 않으면 결국 기관이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즉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는 질의에 대해 유 관장은 “유료화하는 것이 맞다”며 “조만간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안을 제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그는 “(유료화에도 최근 500만명을 넘어선 관람객) 숫자를 어떻게 떨어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지도 과제”라면서 각국 사례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유 관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24일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국민적 동의를 받아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전제하면서 “어느 시점에 가서는 (유료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국감에서는 발언 강도가 세지고 구체화됐다. 당시 그는 “유료는 무료와 방문객의 관람 태도부터 달라진다”는 말로 재유료화를 옹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립중앙박물관은 9월 30일 전격적으로 박물관 내 주차요금을 80%나 인상한 바 있다. 이번 주차요금 인상도 20년만이다.


올해 국정감사를 계기로 문화·관광 분야 여러 요금이 줄줄이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이재명 정부 들어 재정 확장 정책과도 기조를 같이 한다는 평가다. 앞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가에서 “출국납부금을 현실화(인상)해 1만원보다도 훨씬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로 출국하는 모든 국내·외 관광객에게 부과하는 출국납부금은 1997년 1만 원으로 도입돼 유지되다가 윤석열 정부의 전반적인 감세 조치에 따라 27년 만인 2024년 7월부터 오히려 7000원으로 인하된 바 있다.
다만 16일 국가유산청 국감에서 허민 청장은 ‘2005년 이후 3000원으로 동결 중인 경복궁 등 고궁 입장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한 의원의 지적에 “사실 고민이 크다. 입장료 수입에서 사람을 쓰고 보수 관리도 한다. 그러나 국민적 정서나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다소 유보적인 시각을 내비친 바 있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무료화는 도입 초기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된 문제다. 2023년 11월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이 참석한 ‘미술계 현장 간담회’에서 한 사립 미술관장이 “(무료인) 국공립과 (유료인) 사립 간에 예산 차이도 크고 입장료도 불평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며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유료화를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유인촌 장관이 당시 “기존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그 이후 큰 진전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무료화가 시작된 2008년 5월은 유인촌 장관이 첫 문체부 장관일 때였다. 유홍준 관장은 바로 직전인 2008년 2월까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장을 지냈었다.
이와 관련, 최근 박물관 문화상품(뮷즈)로 대박을 치고 올해 매출 300억 원을 전망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사장 정용석)은 문체부 산하이긴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과 별개의 기관이다. 즉 이런 기관들의 예산이 전용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