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우리가 쇄신 대상?" 기업은행 직원들 집단반발

2025-04-15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IBK기업은행이 900억원 규모의 임원 부당대출 사고 이후 고강도 쇄신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 은행 노조가 쇄신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는 부당대출 사고의 당사자인 경영진이 자성하지 않고, 실무진들의 잘못으로 엮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노조는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혁신안을 내놨는데, 사측은 앞서 내놓은 쇄신안을 원칙적으로 고수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1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조는 사측의 금융사고 방지 쇄신안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은행 내부의 온정주의적 조직문화와 더불어 경영진의 부도덕함·비위 행위가 금융사고로 이어졌는데, 정작 사건 당사자인 경영진이 쇄신안을 제시하면서 책임소지를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평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5일 '이해관계자 부당거래 검사' 발표를 통해 기업은행에서 882억원(58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히 사고 규모 중 785억원(51건)은 약 14년 간 기업은행에서 근무했던 퇴직자 G씨 관련 부당대출이었다. G씨는 입행 동기, 전·현직 임직원 사모임, 거래처 관계 등에서 친분을 쌓은 28명의 기업은행 관계자들과 공모해 부당이득을 취했다. 특히 최대 이해관계자인 G씨의 배우자는 여전히 기업은행 팀장(심사역)으로 근무 중이었다. 이들은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대출관련 증빙, 자기자금 부담여력 등을 허위 작성하고, 심사역 등은 이를 공모·묵인해 51건, 785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았다.

이에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금감원 발표 하루 뒤인 26일 'IBK 쇄신 계획'을 내놨다. 김 행장은 "(금융사고는) 내부통제와 업무 프로세스의 빈틈, 시스템의 취약점과 함께 부당한 지시 등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원인"이라며 △업무 프로세스 △내부통제 △조직문화 전반을 강도 높게 쇄신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표적으로 △임직원 친인척 정보 DB 구축 △매 대출 시 담당직원·심사역으로부터 '부당대출 방지 확인서' 수령 △승인여신 점검 조직 신설 △부당지시자 및 지시이행자 엄벌 △독립적인 내부자신고 채널 신설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이익 원천 차단 △자진신고자 면책 조치 △외부전문가 영입 및 감사자문단 운영 등 검사업무 쇄신 △무관용 엄벌주의 △금융윤리·내부통제 교육 강화 △IBK쇄신위원회 구성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 은행 노조 측은 경영진의 자성을 강조하며 쇄신안을 반대했다. 고길우 기업은행지부 노조 국장은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이번 부당대출 사고는) 경영진들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며 "(경영진이) 이 부분에 대한 자성은 없고 오히려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직원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은근슬쩍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진 자체도 쇄신을 해야 되는데 경영진은 어느 누구도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본인들이 이 쇄신을 이끌어가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사실 그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노조는 은행장·전무이사·부행장·본부장 등 경영진의 횡령, 배임, 직장 내 괴롭힘 등 불법·비위 행위 사례를 접수받고 있다. 이를 위해 노조 간부가 사비를 털어 현상금 최대 1000만원 지급까지 내걸었다.

그러면서 사측과 함께 조직문화를 쇄신할 혁신안도 제시했다. 사측의 쇄신안이 근본적인 금융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다. 혁신안은 △경영진 총사퇴 △중기대출·창업기업·기술금융 KPI 폐지 △무한경쟁 유발 가산점 폐지 △부당지시자 엄중 처벌 및 취급자 면책 제도 도입 △부당대출 신고 시 노조 포함 진상조사위원회 개입 △법률·심리상담 지원 제도 마련 △퇴직직원 자회사 및 협력사 낙하산 인사 근절 △골프 등 접대성 친목 모임 전면 금지 △법무사 배정 시스템 도입 및 유착 발각 시 엄중 처벌 △여신 심사부서 완전한 독립 부서로 전환 등을 담고 있다.

상장사인 국책은행의 KPI 달성 비극…"부실대출 유도"

혁신안에서 눈여겨볼 만한 요소는 '중기대출·창업기업·기술금융 KPI 폐지'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중소기업·소상공인·혁신스타트업 등을 상대로 저렴하게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식시장 상장사로서 기업·개인대출 중심의 영업활동으로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수익은 모두 정부(기획재정부)에 배당금으로 전달된다.

문제는 기재부가 배당 성향을 매년 늘리는 가운데, 은행이 억지로 중기 대출을 늘리고 이익도 경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 국장은 "기업은행 공시를 보면 매년 이익을 경신하고 있다"며 "은행 이익 대부분은 예대마진에서 나오고, 예대마진은 결국 KPI에서 중기 대출의 볼륨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윗선에서) 직접적인 강요는 아니지만 그런 곳들(부실기업)까지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KPI를) 달성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목표가 늘어나고 있다"며 "중기 대출, 창업 기업 등의 대출목표를 폐지하거나 줄이지 않으면 부당대출 관련 사고는 또 발생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 창업 기업으로 둔갑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컨설팅, 기술평가 등을 엮어 편법적으로 대출을 내어줄 정도로 영업목표치가 과다하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목표치 이상의 추가 달성에 따른 가산점 부과도 부실을 부추긴다고 평했다. 은행이 영업 현장 KPI를 평가할 때 목표치와 더불어 추가 가산점을 부과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목표치와 가산점을 더한 값을 '최종 목표치'로 인식해 과다 영업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노조의 이 같은 강경 입장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외부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IBK쇄신위원회를 통해 업무프로세스, 내부통제, 조직문화 등 기업은행 전반의 쇄신 계획 적정성과 이행 실적을 외부의 시각에서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점검할 예정"이라며 "업무 프로세스, 내부통제 부문에서 오래된 관행이나 프로세스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개선해 나가고, 조직문화 부문에서도 끼리끼리 문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바꿔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당대출 등 재발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쇄신 추진과정을 경영진부터 다 같이 동참할 필요가 있다"며 "전 직원 교육 등 내부 수용성을 높이는 활동을 지속추진해 공감대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고 전했다.

노조는 오는 16일 오전 을지로 본점에서 본부 직원 등 조합원 2000명이 참여하는 '조직 사수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한국노총 위원장, 금융노조 위원장, 전현희·박홍배·신장식·차규근·정태호·한창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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