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만 보인다

2025-10-21

대통령실에선 위로 갈수록 격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수석 시절을 두고 “첫 1년 동안 치아를 10개쯤 뽑았다. 웃기는 건 우연치 않게도 나부터 시작해 직급이 높을수록 뺀 치아 수가 많았다”(『운명』)고 썼다. 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잇몸 영양제를 먹고 있다고 한 일이 있다. 그럴 만하다.

강훈식 특사부터 김현지 논란까지

'청와대 정부'라던 문재인 시절 능가

권력 좁게 쓰면 결국 정권 부담으로

그런 강 실장이 방산 수출을 위한 ‘전략경제협력 특사’까지 맡았다고 해 놀랐다. 전례는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임종석, 윤석열 정부 때 김대기 실장이 대통령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왔다. 문 정부 때엔 UAE 측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찾았고, 윤 정부 땐 김 실장의 MB(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경제수석∙정책실장)이 작용했다. 둘은 그래도 원포인트 성격이었다. 강 실장은 3차례에 걸쳐 방산 협력 업무를 한다고 한다.

강 실장의 하루가 48시간인 것도, 몸이 두 개인 것도 아니니 부담일 수밖에 없다. 본래 업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그걸 감내하고라도 실장을 보낼 이유가 있나. MB 정부에선 곽승준∙박영준 등 ‘실세’ 소리 듣던 정부 인사들이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행보도 튄다.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담판 짓는 사진을 보니 김 실장이 맞상대로 보였다. 그간 한·미 간 협상에서 가동된 라인 중 김정관(산업통상부 장관)-러트닉 라인이 통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김 장관은 비켜 앉았다. 그 무렵 언론에선 “미국에서 김용범·구윤철·김정관이 나섰다”고 썼다. 이들 관계를 잘 아는 전직 관료는 “김 실장은 앞장서는 스타일이고, (구윤철) 부총리는 잘 모르고, 김 장관은 젊으니 누가 나설지 답이 나오지 않냐”고 했다. 그래도 ‘비서’가 본질인 정책실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총리·장관을 가린다? 의아했다. 경제 라인의 영(令)은 뭐가 되나.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정부’란 말이 나왔다. 청와대가 내각을 압도해서다. 이재명 정부의 초반 양상은 그 이상이다. 내각 활용도는 더 떨어지고 대통령실만 두드러진다. 정상인가.

관찰되는 대통령실 내부 움직임도 묘하다. 9월 말 이래 네이버 검색량에서 이재명 대통령보다 두세 배인 김현지 부속실장의 논란이 상징적이다. 국감 즈음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장으로 이동한 게 주목받았지만, 못지않게 특이했던 건 직전의 인사수석 신설이다. 김 부속실장이 총무비서관으로 담당했던 인사가 논란이 됐을 때, 한 여권 인사는 “김 비서관이 지금 자리엔 어울리는 능력이 없다고 대통령이 생각한다”고 장담했다. 내부 경쟁이었다. 정작 인사수석이 신설되면서 인사 책임론이 희석됐고 곧 부속실장 인선까지 나며 김 부속실장이 대통령으로 향하는 길목을 독차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행위”라고 말한 학자 카를 슈미트의 설명을 참고할 만하다. 나치를 옹호했던 전력 탓에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적 영역에서 추방됐던 슈미트는 1954년 권력에 대한 관찰기(‘권력과 권력자의 길에 관한 대화’)를 썼다. 여기서 ‘권력의 대기실(또는 앞방, Vorraum)’이란 개념을 말했다. 대충 이렇다.

“직접적인 권력이 자리한 모든 공간 앞에 간접적인 영향력과 위력을 지닌 대기실이 있다. 권력자에게 이르는 통로, 권력자의 심중으로 통하는 복도를 말한다. 권력이 특정 지위나 특정인, 특정 그룹에 집중될수록 그만큼 통로의 문제와 권력자에게로의 접근 문제가 첨예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기실을 차지하고 앉아 통제하는 사람 사이에서의 암투도 그만큼 더 격렬해지고 기분 나쁘게 그리고 소리 없이 진행된다. 권력자 자신은 자기 개인에게 직접적인 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고립된다.”(『헌법과 정치』)

분명한 건 누구보다 넓은 권력 자원과 기반을 가진 이 대통령이 의외로 폭 좁게 운용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왜 그런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