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을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뼈 때리는 연극 <코믹>

2025-04-02

예술은 사회 또는 시대와 따로일 수 없다. 어떤 예술 장르보다 수용자와의 거리가 가까운 연극은 더욱 그러하다. 창작자의 의도가 어떠하든 관객과 관객을 둘러싼 환경이 작품의 의미를 결정한다. 연극 한 편 마음 편하게 보기 어려운 하수상한 시절, 시국을 돌아보게 만드는 연극 작품을 만나 본다.

형사재판인지 가사재판인지 경계가 모호한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 안. 남편이 밥주걱으로 아내의 뺨을 후려친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중이다. 판사는 말대꾸하는 보안요원을 향해 “내 말이 틀렸냐”고 따진다. 이에 보안요원은 판사의 언어를 빌려 장황한 답을 내놓는다. “판사님 스스로 말한 것을 제가 판결하는 것은 판결하는 사람을 판결해 달라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보안요원으로서 판사님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은 그런 질문을 보안요원에게 하는 것 자체가 본 재판의 보안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보안요원의 판단에 근거하여 (중략) 본 보안요원의 법률적 판단은 저의 이의를 유보하는 것이 마땅하여 각하합니다.”

판사는 황당해 하며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이해를 못하겠네”라고 하는데, 보안요원의 답이 뼈를 때린다. “판사님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재판에 출석한 증인인 이웃집 남자는 드잡이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는 금슬 좋은 부부가 탱고를 추고 있더라는 식으로 증언한다. 또 다른 증인 옌벤 출신 식당 아줌마는 “그 아즈마이 정말 염치 없슴다”라며 오히려 남편을 두둔한다. 모든 사람의 기억은 다르다는 전통적인 ‘라쇼몽(羅生門)’식 연출이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첫 작품으로 지난달 28일 막을 올린 연극 <코믹>의 9개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이혼법정’의 내용이다. 10분 남짓한 이 에피소드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서너달 동안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그 외의 법정 안팎 풍경들이 자연스레 떠올려진다. 여러 유형의 ‘법 기술자’를 비롯한 인간 군상의 모습과 증언들, 서울서부지법에서의 폭동과 구속취소에 따른 석방까지 연극보다 더 극적인 장면들이 수두룩했다.

연극 <코믹>은 독일 극작가이자 희극배우인 카를 발렌틴(1882~1948)의 <변두리 극장>이 원작이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신체극의 대가 임도완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프롤로그와 9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작품의 시작과 끝에는 출연진 전원이 “괜찮다”를 반복해서 외치는 노래를 합창한다. 안 괜찮은 시국에 울려퍼지는 괜찮다는 노래는 역설적인 동시에 ‘괜찮을 것’이란 기대를 담은 주문이기도 하다.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부조리’다. 여덟번째 에피소드 ‘떠넘기기’에서는 관공서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 흔히 겪을 수 있는 전화 떠넘기기 상황이 재현된다.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떠넘기는 응대자들에게는 습관처럼 굳어진 ‘제 할 일’이다.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상황적 부조리가 관객을 키득거리게 한다.

모든 에피소드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는 물론 옌벤과 평안도 사투리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들 사이의 소통 단절을 한 무대에서 보여주려고 연출가가 고안한 수단이 바로 사투리다.

제목은 <코믹>이지만 빵빵 터지는 <개그콘서트> 같은 웃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얼한 재미가 있다. 임도완 연출은 “우리의 모순된 일상과 사회의 코믹한 모습을 확대해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은 “어수선한 시절에 어수선한 연극 한편으로 위안을 얻기 바란다”고 했다.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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