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사피엔스』

2024-10-11

이동준의 책이야기- 여덟 번째

이동준은 광주에서 출생했다. 책을 좋아하고 공상을 많이 한다. 현실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됐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만 동시에 긍정의 힘을 믿고 있다. 호기심도 많아서 여러가지 일에 관심이 많고 치과의사로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편이며 겁도 없다. 도전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목포교도소를 거쳐 현재는 전주교도서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

- 편집자 주

호모 사피엔스는 몇만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살아가는 하찮은 동물이었다. 이후 몇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지배자가 되었고 생태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현재 이 종은 영생에 도전하면서 신의 권능에 도전할만한 능력을 갖추어 가는 중이다.

약 3만 년 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동부 아프리카에는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 아시아 일부에는 자바원인이 거주했다. 모두가 사람 속(屬)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현재는 우리 종밖에 남지 않았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왔으며 지속적으로 대형 포식자에게 사냥을 당해왔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인 것이었다. 이르면 80만 년 전쯤에 일부 인간 종이 가끔 불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약 30만 년 전이 되면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은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이제 인간은 빛과 온기의 믿을만한 원천이자 배회하는 사자에 대항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음식을 익히는 일이다. 조리 덕분에, 인간이 자연상태 그대로는 소화할 수 없는 밀과 쌀, 감자 등이 인간의 주식이 되었다. 불은 식품의 화학적 조성뿐 아니라 그 생물학적 영향도 바꿔 놓았다.

불에 익히면 음식을 오염시키는 세균과 기생충이 죽는다. 인간이 원래 좋아하던 과일, 견과류, 벌레, 죽은 고기도 불에 익히면 씹고 소화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침팬지는 날것을 씹어 먹느라 하루 5시간을 소모하지만 사람은 익힌 음식을 먹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익혀 먹는 화식(火食)의 등장, 인간의 창자가 짧아진 것, 뇌가 커진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다란 창자와 커다란 뇌를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 둘 다 에너지를 무척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화식은 창자를 짧게 만들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게 해주었고 의도치 않은 이런 변화 덕분에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가질 수 있었다.

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독수리와 달리 인간은 불을 일으키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용도로 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이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나갔고 거기서부터 유라시아 땅덩어리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 번성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라시아 지역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이미 정착해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상충하는 이론이 존재한다. ‘교배이론’은 그들이 서로 끌려 성관계를 하고 뒤섞였다는 설이다. 교배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땅에 퍼져나가면서 서로 교배했고 결국 두 집단은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유라시아인은 순수한 사피엔스가 아니라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합이다.

마찬가지로 사피엔스는 동아시아로 퍼져나가서도 현지의 호모 에렉투스와 교배했다. 그렇다면 중국인과 한국인 등 동아시아인은 사피엔스와 에렉투스의 혼합이다.

이와 대립되는 견해는 ‘교체이론’이다. 교체이론은 전혀 다른 설명을 들려준다. 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들은 해부학적으로 달랐으며 짝짓기 습관이나 체취까지도 차이가 났을 가능성이 매우 커서 서로에게 성적인 관심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만일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모든 현대 인류의 조상은 하나같이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순수한 사피엔스’다. 이 논쟁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7만 년이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만일 ‘교체이론’이 맞다면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대체로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다.

하지만 ‘교배이론’이 맞다면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들 사이에는 수십만 년의 연원을 둔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화약고로써 폭발력을 지닌 인종이론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완전히 다른 종은 아니지만 대체로 별개의 종이었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유전부호나 신체 특징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 사회적 능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일부 운 좋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사피엔스에 편승했다.

사피엔스는 기술과 사회적 기능이 우수한 덕분에 사냥과 채취에 더 능숙했다. 이들은 번식하고 퍼져나갔다. 이들보다 재주가 떨어지는 네안데르탈인은 먹고 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집단의 크기는 줄어들고 서서히 모두 죽어갔다. 이웃의 사피엔스 집단에 합류한 한두 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폭력과 대량학살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다. 현대의 경우를 보아도 사피엔스 집단은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 등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곧잘 다른 집단을 몰살하지 않는가?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의 서식지에 그처럼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인간 종들을 멸종시켰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사피엔스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을 인지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다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 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한가? 우리는 허구 덕분에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신화, 현대국가의 민족주의 신화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국가, 중세교회, 고대도시, 원시부족 등이 모두 그렇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이후 약 12,000년 전 인류는 농업혁명에 돌입했다. 수렵채집 시기에서 농업의 시기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의 90%는 기원전 9,500~3,500년에 우리가 길들인 가축과 농작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농업 덕분에 가용식량은 늘어났지만 이같은 번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인구폭발과 만족한 엘리트였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그 식단은 빈약했고 건강은 더 나빴다. 잉여 농산물은 특권을 가진 소수의 손으로 들어갔고 이것은 다시 압제에 사용되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였다. 인류가 밀을 길들인(작물화한)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농업혁명은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으며 돈이나 종교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았다.

과학혁명은 약 5백 년 전 일어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성장, 글로벌화,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확대, 환경파괴 등을 불렀다. 이것은 차례로 250년 전의 산업혁명, 약 50년 전의 정보혁명을 유발했다. 후자가 일으킨 생명공학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이 중 어느 혁명에 의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감정과 성적 특질 등은 수렵채집시대에 맞춰진 우리의 마음이 후기 산업사회의 환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이 가득 찬 냉장고가 딸린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DNA는 우리가 여전히 사바나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탕과 지방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욕구가 대표적인 증거다.

과학혁명의 후속편인 생명공학혁명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생명공학적 신인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보그로 대체될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한 자멸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영생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인간의 일상적 행복은 물질적 환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유명한 연구결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돈은 차이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가난을 벗어나게 해줬을 뿐이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돈이 더 많아져도 행복의 수준은 거의 혹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사피엔스가 환경을 바꾸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서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인간의 능력과 활동범위는 크게 늘어났지만 각 사파엔스들의 복지는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또한 다른 종들은 불행해졌다.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이는 인류의 역사상 극히 최근의 일이며 아직 상황이 불안정하다. 비록 대다수 인간의 생활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기술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지, 어디로 가는 게 옳은 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가 기술을 통해 이런 힘을 가지고도 책임을 지고 있는가?

지니고 있는 힘에 따른 책임을 지려면 대다수의 인간들뿐만 아니라 희생된 다른 종의 행복도 개선해야 한다. 또한 미래도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를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과 즐거움을 추구할 뿐이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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