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여러 이름난 미술관 중 하나가 오랑주리미술관이다. 19세기에 오렌지 온실(Orangerie)로 건축된 건물이 1927년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이름에 남겨뒀다. 탄생 배경 탓에 파리의 다른 유명 미술관·박물관에 비해 그 규모는 작고 소장품도 140여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벽면을 가득 메운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비롯해 훌륭한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오랑주리미술관의 소장품전이다. 대표작인 모네의 수련은 미술관을 가득 채운 크기 탓에 이번 전시엔 한국으로 건너오지 못했지만, 19세기를 대표하면서 서로 다른 화풍을 보인 폴 세잔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오랑주리미술관 소장품 39점과, 같은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는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11점이 공개되고 있다.


인물화와 정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별로 나뉜 공간에는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세밀한 묘사에서 따뜻함이 잘 느껴진다면, 세잔의 그림에서는 보다 또렷하고 강렬한 인상을 강조한 붓질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장 초입에 나란히 놓인 르누아르의 ‘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1909)와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1885~1895)을 번갈아 보고, 르누아르의 ‘꽃병 속의 꽃’(1898)과 세잔의 ‘푸른색 꽃병’(1889~1890)을 비교해 본다면 느낄 수 있다. 주제에 따라 번갈아 놓인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보며 ‘둘 중 누구의 작품일지’를 자연스레 맞춰보게 된다.
20세기 입체주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2점도 함께 소개된다. 인상주의 작가인 세잔, 르누아르의 그림과 피카소의 화풍은 그 결이 다르지만, 피카소는 세잔의 정물화와 르누아르의 누드화의 배치와 구도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전형적인 피카소식 입체주의가 생각나는 ‘대(大) 정물’(1917)과 세잔이 그린 ‘사과와 비스킷’(1880년경)은 자세히 봐야 같은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세잔은 정물화를 그리며 색채로 입체감을 주되, 형태는 단순화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피카소의 ‘대 정물’에서는 강렬한 색채가 보이진 않지만 책상 위에 세심하게 흩어진 사물들은 세잔의 그림을 닮았다. 전시는 내년 1월25일까지. 입장료는 일반(만 19~64세) 2만2000원.


모네의 수련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해외 명작 : 수련과 샹들리에’에서 아쉬움을 달래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해외 작가들의 회화부터 설치작품 등 44점이 엄선돼 공개되고 있다. 전시 명의 수련이 다름 아닌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이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수집했던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가로 2m, 세로 1m로 오랑주리를 상징하는 수련 연작만큼 크기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모네가 1883~1926년 파리 근교 자택에서 집중적으로 그린 수련 작품 중 하나로, 연못 위에 뜬 수련과 수면에 비친 하늘과 구름, 빛을 그린 모네 특유의 표현이 잘 나타나 있다.

샹들리에는 아이웨이웨이의 ‘검은 샹들리에’(2017~2021)를 뜻한다. 중국 출신의 반체제 작가로 유명한 아이웨이웨이가 만든 샹들리에 모양 조형물은 가까이에서 보면 두개골과 척추, 장기 등 섬뜩해 보이는 상징물로 이뤄졌음을 알게 된다. 민물게의 모습도 보인다. 중국어로 민물게(河蟹)는 검열을 반어적으로 은유하는 인터넷 은어(和谐 )와 발음이 같다.

국내 최초로 상속세 대신 납부된 미술품 중 하나인 쩡판즈의 2007년 작 ‘초상’ 2점도 처음 공개된다. 공중에 연기처럼 흩어지는 듯한 사람을 그린 쩡판즈의 초상 연작은 소외된 인간의 공허하고 불안한 내면을 상징한다. 초상 연작은 시중에서 10억원이 넘는 고액에 거래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가 열리는 1원형전시실 구조, 시대를 초월한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는 점은 관람객이 전시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돕는다. 전시는 2027년 1월3일까지. 과천관 통합권 관람료 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