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H-1B 비자

2024-12-30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소년은 일찌감치 기술과 사업에 소질을 보였다. 12세에 비디오게임을 만들어 500달러에 팔았을 정도다. 그는 17세에 캐나다 시민권을 따서 대학에 입학하고 2년 뒤 대학 편입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어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들어갔지만 창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1995년 동생과 함께 온라인 정보 업체 Zip2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4년 뒤 3억 달러에 팔렸다. 세월이 흘러 그는 혁신 기업가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이야기다.

머스크의 미국 이민 과정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기 전 불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최근에야 본인이 ‘X(옛 트위터)’ 게시글을 통해 H-1B 비자를 소지했었다는 사실을 밝힌 정도다. H-1B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등 전문직을 위한 취업 비자다. 매년 최대 6만 5000명이 이 비자를 발급 받아 최장 6년간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 2023년 기준 H-1B 소지자는 75만 5020명이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의 혁신 생태계를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술직이다.

내년 1월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진영에서 H-1B 비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불법 이민에 반대하지만 H-1B 비자는 옹호하는 머스크 등 빅테크 출신 인사들과 모든 이민에 반대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 간 내분이 생긴 것이다. 머스크는 “내가 스페이스X와 테슬라 등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많은 회사를 설립한 사람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것은 H-1B 덕분”이라면서 “최고의 인재들을 다른 나라에서 일하게 만든다면 미국이 지게 된다”고 H-1B를 강력히 옹호했다. 1기 집권 때 H-1B 비자를 비판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전문직 비자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며 슬그머니 빅테크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미국이 H-1B비자 프로그램을 확대해 외국의 인재들을 빨아들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치 블랙홀’에 빠진 한국은 과연 글로벌 인력 확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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