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변 권력 구조는
록브리지 네트워크 출신인 ‘뉴마가’
실리콘밸리식 자유시장주의 신봉
국가보다는 개인·기업의 혁신 우선
트럼프 첫 당선 일등공신 ‘올드마가’
극우 민족주의·경제 포퓰리즘 기반
대중국 매파·반이민 정책 강력 지지
태생부터 다른 두 계파 ‘불안한 동거’
H-1B 비자 둘러싸고 분열 최고조
트럼프 중재로 휴전… 갈등 불씨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 그의 지지 세력이자 미국 정치 지형의 제일 오른쪽에 위치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주도권과 노선을 둘러싼 신·구 갈등이 지속됐다. 구세력을 대표하는 이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 우파 세력을 대표하는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이다. 새로운 세력을 대표하는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과정에서 거대한 자금을 지원한 테크(기술)계 우파 엘리트들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모든 경합주를 싹쓸이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이룬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이들의 갈등은 미국의 여당이자 상·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향후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와 연결된 문제다. 이들의 갈등은 지난 몇 달간 배넌이 머스크를 “기생충 같은 불법이민자”로 부르는 등 극단으로 치달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약간의 휴지기에 들어간 징후도 포착된다. 하지만 태생부터 결이 다른 이들의 ‘한집 살림’은 언제든 다시 갈등이 점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왜 싸우는지를 알면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권력 구조가 보인다.
◆록브리지 네트워크와 마가
2024년 대선에서 물적 지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선거운동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머스크는 한때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 정가에 따르면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기 시작한 기원에는 ‘록브리지 네트워크(Rockbridge Network)’가 있다. 실리콘밸리 밴처투자자였던 J D 밴스 부통령과 보수 성향 평론가 크리스 버스커크가 2019년 처음 결성한 이 단체는 실리콘밸리 우파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우파 뉴스 보도, 유권자 참여 활동, 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실리콘밸리는 민주당 성향이 우세했지만 록브리지 네트워크는 만들어지자마자 우파 성향의 실리콘밸리 인사들을 빠르게 흡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들은 광범위한 규제 완화, 월가를 규제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약화, 암호화폐 및 인공지능(AI) 규제 완화를 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장악하면서 전통적인 공화당 기부 네트워크가 영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자금력으로 무장한 록브리지 네트워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그룹에서 빠르게 세력을 키워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록브리지 네트워크는 스스로를 ‘정치적 밴처캐피털 회사’라고 불렀다.
밴스 부통령은 이후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되고 부통령 후보로까지 진출하며 공식적으로는 록브리지 네트워크에서 손을 뗐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관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록브리지 네트워크의 주요 인사 중 한 명은 밴스 부통령과도 막역한 피터 틸 현 팔란티어 회장(페이팔 창업자)이다. 그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할 때 함께했던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이 머스크다. 대선 전 록브리지 네트워크를 구성했던 인물들이 현재 ‘뉴 마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올드 마가’는 2016년부터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배넌을 필두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선거전략가인 로저 스톤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2016년 당시 정치판의 신예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전략을 확립하고 포퓰리즘과 반엘리트 정서를 활용해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색채를 확립한 이들이다. 반이민, 반다양성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대변하는 가치들을 신봉한다. 이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장악하면서 정통 공화당 보수파 중 마가 세력으로 편입된 인물들도 광의의 올드 마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정통 보수파였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로 변신한 린지 그레이엄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이 한 예다.


◆전문직 비자 놓고 갈등 최고조
올드 마가와 뉴 마가는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관계를 유지했지만, 태생부터 다른 이들이 쉽게 융화되기는 어려웠다. 대선 뒤 이들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은 사건이 H-1B 비자(전문직 비자)를 둘러싼 논쟁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의 가장 핵심 의제 중 하나인 이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이 앞으로 어떤 노선을 타게 될지 가늠할 수 있는 사건이다.
논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뒤 인도계 이민자 벤처투자자이자 머스크의 엑스(X·옛 트위터)에서 플랫폼 재구축 작업을 한 스리람 크리슈난을 인공지능(AI) 정책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발생했다. 배넌은 크리슈난의 임명 뒤 SNS에 올린 글에서 “H-1B 비자 프로그램은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임금을 낮추고 미국 기술 노동자를 대체하는 데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이후 머스크가 엑스에서 “미국에는 정말 우수하고, 정말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 엔지니어가 충분하지 않다”며 H-1B 프로그램을 옹호하면서 이전에도 머스크를 좋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배넌은 이를 기점으로 공공연히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H-1B 비자와 관련해 머스크의 입장을 옹호했지만 이 사건은 섞일 수 없는 두 계파가 하나의 진영 아래 묶여 있는 마가의 현실을 보여줬다. 배넌 스스로 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와의 인터뷰에서 “일론(머스크)과 나는 기술, 비자 및 이민 정책 같은 문제들에서 엄청나게, 거의 다리를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배넌은 극우 민족주의 및 경제적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미국우선주의를 주창한다. 다국적기업을 비판하고, 특히 대중국 매파이며 반이민 정책을 강하게 지지하는 전통적 극우다. 반면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식 자유시장주의를 신봉하고 국가보다 개인과 기업의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다. 스스로도 이민자 출신인 머스크는 전문직 이민자의 노동이 실리콘밸리가 돌아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경험으로 아는 사람이다. 이 둘의 사상적 차이는 결국 올드 마가와 뉴 마가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중재 나선 트럼프·밴스… 갈등 불씨 여전
배넌과 머스크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자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이를 중재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에게 공개적으로 머스크를 공격하는 것을 자제하고 사적으로 만나 갈등을 해결하라고 요청했다. 록브리지 네트워크의 창립자로 실리콘밸리 우파들의 선두 격이면서도 이 문제에 침묵을 지키던 밴스 부통령은 지난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실리콘밸리 벤처투자회사 안드레센호로위츠(A16Z) 주최 고위급 기술회의에서 밴스 부통령은 연설을 통해 “나는 우파의 두 부류 모두에 속한 자랑스러운 일원”이라며 “기술 중심의 사람들과 포퓰리스트들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노동자들, 우리 포퓰리스트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혁신가들은 같은 적을 가지고 있다”고 선언했다. ‘적’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진보 성향 정치 엘리트들이다.
밴스 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스스로를 어느 한쪽으로 규정짓지 않음으로써 현재 마가 진영에 속한 모든 이를 융합해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라고 폴리티코는 해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현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성공에도 올드 마가와 뉴 마가의 융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급에서 나온 이 같은 노력에 배넌 역시 약간은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주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 활동이 “모든 과정이 좋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는 꽤 효과적이었다”고 언급했다. 그가 몇 달간 머스크에 대한 비난을 퍼부은 끝에 처음 나온 긍정적인 발언이라고 정치전문지 더힐은 전했다. 다만 워싱턴 정가에선 올드 마가와 뉴 마가의 근본적 차이와 갈등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