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법정물이나 메디컬물 같은 장르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최근 안방극장을 달구는 건 법정물인데, ‘서초동’은 지난 8월 10일 종영했고, ‘에스콰이어’는 4화까지 방영한 상태(8월 13일 기준)다. 두 작품 모두 변호사들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송무 변호사(의뢰인을 대리해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가 주인공이란 공통점이 있는 12부작이다. 심지어 현직 변호사 출신 작가들이 집필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그 맛은 판이하게 다르다. 음식으로 치면 담백슴슴한 평양냉면과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탕 정도의 차이?

제목부터 두 작품의 차이는 확실하다. 어쏘 변호사(로펌에 소속된 변호사) 5인방의 성장기를 그린 ‘서초동’은 제목처럼 서초동 법조타운을 배경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변호사들의 생활적인 면모에 집중한다. 쉽게 제목을 짐작하지 못할 ‘에스콰이어’는 남성 잡지 이름이 아니라 영미권에서 변호사를 존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뜻한다. 원래 중세시대 귀족 계층을 지칭하던 단어인데 현재는 변호사 이름 뒤에 붙는 ‘Esq.’로 널리 쓰이며 전문성과 도덕성을 뜻한다.

‘서초동’은 변호사들의 ‘직장인 모먼트’에 집중한 만큼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게 부각된다. 대중교통으로 교대역에 내려 사무실에 출근한 뒤, 슬리퍼로 갈아 신고 ‘업무모드’로 들어가기 전 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아, 하기 싫어”라는 대사부터 이 땅의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으니까. 각기 다른 사무실에 소속된 또래의 어쏘 변호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는 모습 또한 ‘점심시간에 진심인’ 직장인들 그 자체였다.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동년배들의 성장기란 점에서 ‘미생’도 생각나고, 밥 먹는 장면이 주요하게 다뤄지며 ‘밥정’을 쌓는다는 점에서 ‘식샤를 합시다’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도 떠오르게 된다.

9년차 변호사인 안주형(이종석)부터 육아휴직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배문정(류혜영), 대학원 박사과정과 변호사 업무 사이 고민하는 하상기(임성재), 변호사 업무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건가 근본적인 고민을 하는 조창원(강유석), 그리고 1년차 변호사인 강희지(문가영)에 이르기까지 1989년생부터 1993년생까지 30대 중후반의 직장인이 겪는 여러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기존의 법정물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라 신선함을 안겼다.

반면 ‘에스콰이어’는 드라마틱한 법정물 그 자체다. 국내 5대 로펌에 속하는 대형 로펌 율림의 에이스 송무 변호사 윤석훈(이진욱)과 신입 변호사 강효민(정채연)이 주인공으로, 천재적 재능을 지닌 두 사람의 실력이 첫 화부터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강효민이 윤석훈을 보고 배우는 포지션이지만, 윤석훈 역시 효민에게 감응돼 달라지는 서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며, 석훈이 이혼남인 만큼 두 사람이 ‘러브라인’으로 엮일 수 있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기에 대형 로펌인 만큼 차기 대표를 향한 권모술수 등 사내정치 이야기도 주요 스토리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 모두 의뢰인을 직접 만나며 소송을 진행하는 송무 변호사를 다루지만, 그 이야기의 결 또한 천양지차로 다르다. ‘에스콰이어’에서 윤석훈이 펀드회사 대표 최철민(도상우)의 개인 송무를 맡게 되는 에피소드가 좋은 예. 최철민이 자신의 친딸을 아동학대 한다는 혐의를 제기한 가사도우미와의 분쟁을 수습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그야말로 ‘마라맛’이다. 실제로 딸에게 폭력을 가했던 아동학대범이었던 최철민을 응징하기 위해 윤석훈은 최철민의 자금 횡령 정보를 자금줄 조폭들에게 제공하며 ‘눈눈이이’를 시전하며 시청자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 와중 자신이 직접 아동학대범에게 주먹을 날리는 건 물론이다.

반면 ‘서초동’은 첫 화부터 법정 드라마를 보며 비장하게 변론을 준비했다가 머쓱해지는 신입 변호사(김도훈)를 특별출연시키며 ‘서초동’이 기존 드라마처럼 히어로와 빌런으로 대립되는 격정적인 드라마가 아님을 천명했다. 안주형 같은 경우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이의 남편이 고의적으로 주형에게 이혼 소송을 맡겼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옛 연인의 남편이 주형에게 끝까지 이기죽거리며 그야말로 ‘매를 버는’ 행태를 보임에도 조용한 경고만 날릴 뿐이다. 조창원이 돈 많은 재벌 2세의 접견 변호사 노릇을 하며 분노를 삼키는 모습도 기존 드라마의 ‘사이다’와 걸리가 멀다. 의뢰 또한 평범한 소시민과 서민의 일상다반사를 다양하게 다룬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됐지만 결국 돈이 없어 벌금도 못 내고 노역을 하는 피해자처럼, ‘에스콰이어’의 ‘눈눈이이’ 같은 시원한 결말을 맞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서초동’의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좋았다. 어쏘 변호사들의 성장기도 좋았지만, 그들이 소속된 로펌의 대표 변호사들의 모습도 재미났다. 여느 드라마로 따지면 빌런 포지션이었던 돈만 좇는 얄미운 성유덕 변호사(이서환)부터 감정이 전혀 없는 듯한 나경민 변호사(박형수), 온화하고 다정하지만 이질적인 면모도 갖고 있는 강정윤 변호사(정혜영) 등이 보여주는 ‘사장님 모먼트’가 꽤나 흥미로웠거든. 대표들의 입장과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들이 어쏘 변호사들의 입장과 충돌하며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눈 돌아가게 휙휙 전개가 빠른 ‘에스콰이어’는 시청률 또한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1화 시청률이 3.7%였는데, 4화에선 8.3%를 찍으며 주말 드라마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소리다. 이진욱의 멋진 수트핏과 정채연의 똑부러진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마라탕을 좋아하진 않지만, 자극적인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예정이다.
어떤 분위기의 법정물을 좋아할지는 취향 차이지만, 법정물을 좋아한다면 가급적 두 작품 모두 시청하길 권한다. 이토록 다른 법정물을 비교해 보는 경험이 또 색다를 테니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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