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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 아빠를 갑작스럽게 잃은 내게, 죽음은 극도로 무섭고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상실감이 마음 깊은 곳에 박힌 탓인지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래서 늘 외면하고 싶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암병동에서 일해야만 했다.
신입 간호사 시절, 내가 처음 임종 간호를 했던 환자는 세 자녀를 둔 5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이미 우리 병동에 입원했을 때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얼굴을 덮는 큰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암이 뇌를 비롯한 전신에 전이되어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담당 교수님도 “당장 오늘이라도 임종하실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다”고 자녀들에게 말했다. 그 말이 보호자들에게 얼마나 무겁게 들렸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세 자녀는 언제나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평소처럼 엄마에게 말을 건네며 손톱을 깎아주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그들에겐 지금 이 순간이 엄마와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곁에 있는 것, 그것만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벽 투약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입원해 있던 병실에서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달려가 보니 모니터에 표시된 산소포화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급히 재어본 혈압 역시 정상 이하였다. 병실 내에서 임종하게 둘 수 없어 급히 치료실로 옮겼다.
고요한 새벽녘,
치료실에는 산소 주입기의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생명이 점점 꺼져가는 동안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모니터의 수치는 한참을 낮은 상태로 머물다가, 치료실로 옮긴 지 한 시간쯤 지나자 결국 ‘0’으로 떨어졌다. 당직의사가 와서 사망을 선고했고, 이제야 현실이 된 이별 앞에서 세 자녀는 오열했다.
그 순간, 내 눈앞에서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쉽게 꺼져버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던 사람이 이제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마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다 스러지듯,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토록 가깝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사람의 생이 손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담당간호사로서의 ‘사후처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