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후 차츰 발양되어 오던 독립운동사가 지난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무참히 망가졌다. 2023년 4월 어느 날 저녁 TV를 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이 들려왔다.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필자는 40여년 연륜을 가진 독립운동사 연구자다. 한평생 열악한 환경에도 참고 견디면서 공부해온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독립운동 역사는 나라의 자존과 국민의 행복을 담보하는 학문이라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윤석열의 ‘일본 무릎’ 발언으로 나의 소중한 40년 삶이 부정당하고 송두리째 짓밟혔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학자는 어느새 선량한 일본 사람의 무릎을 꿇리는 일에 평생 매달린 깡패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 발언은 애써 진실을 외면한 채 역사를 심하게 왜곡한 말이다.
며칠 전 필자가 몸담았던 독립기념관 김형석 관장의 광복 80주년 경축사도 명백한 역사 왜곡을 담고 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한 모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945년 광복이 연합국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망언을 했다. 독립운동의 역사를 타율적, 피상적으로 접근한 무지와 어리석음의 소치이거나 의도적으로 훼방하려는 불순한 저의에서 나온 망언이다. 학문적 양심이라는 미명의 탈로 가장한 궤변이다. 독립운동사를 훼방하는 이러한 언동은 곧 대한국민의 자존을 훼손하는 행위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무수한 애국선열이 흘린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땅 위에 세워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1945년 12월, 백범 김구가 그동안 독립운동 전선에서 산화한 순국선열에게 조국이 독립되었다는 사실을 고하는 추도문에서 ‘선열은 곧 국명(國命)’이라고 단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대한민국이 선열의 피와 땀에서 탄생했다는 동시대 참여자의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역시 1945년 광복이 연합국 승리로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로 웅변해 준다. ‘장탄일성(長歎一聲) 선조일본(先弔日本).’ 제국주의·군국주의의 잘못된 길을 걷는 일본의 장래 멸망을 확신하고, ‘긴 탄식 소리로 미리 일본을 조문한다’는 뜻이다. 일제 패망에 대한 이와 같은 확신은 곧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도 직결된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에 앞서 한인애국단 선서 사진을 찍었다. 앞서 일왕 처단을 시도했던 이봉창 의사가 그러했듯이,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사진 속의 윤 의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사지에 임하면서도 그가 지었던 그 미소는 대한독립의 그날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독립운동에 매진한 애국선열들의 뜨거운 피와 정성, 노력이 1945년 광복으로 결실된 것이다. 연합국의 승리는 그 광복의 계기가 되었을 따름이다. 연합국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기록을 필자는 여태껏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지닌 숭고한 가치를 짓밟고 우리가 스스로 광복을 연합국의 선물이라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해 순국한 향산 이만도가 문득 떠오른다. 퇴계 이황의 11대 혈손인 그는 나라가 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24일을 굶어 순국한 분이다. 단식 소식을 듣고 어느 한인 순사가 찾아와 단식을 만류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이만도의 가족을 협박했다. 이때 이만도는 순사를 나무라는 대신 “너 같은 자식을 둔 네 아비를 불러 야단치겠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역사 자산인 독립운동사의 가치와 정신을 왜곡하는 사람들, 정작 그 선조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참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