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한번, 재무성을 해체해야 하는 이유를 전합시다.”
8월 초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라온 글이다. 시위하는 사람의 사진을 첨부하고 “8월 23일 오후 4시”라는 글자를 적어뒀다. 약속의 날, 실제로 도쿄 내 관청 밀집 지역인 ‘가스미가세키’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현장 참가자에 따르면 50명가량으로 폭염 탓인지 많진 않았다. 일부 참가자가 켠 유튜브 라이브 채팅창에는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댓글이 연신 올라왔다.
재무성 해체 시위는 해묵은 현상이다.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개최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SNS에서 ‘재무성 해체’ 구호가 먼저 퍼졌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 집권 직후인 지난해 10월 중의원(하원) 선거를 거치며 확산을 거듭했다. 연소득 비과세 구간을 이르는 ‘103만엔의 벽’을 높여 세 부담을 줄이자는 야당 주장이 주목받은 시기다. 마침 쌀값 급등도 심각했다. 감세안에 정부·여당이 난색을 보이자 재무성이 ‘흑막’이라는 주장이 부상했다.
올해 1~4월엔 시위 참가자 수가 많아 현지 언론과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이들을 다루는 기사를 찾기 어렵다. ‘반(反)재무성’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 사퇴 반대 등 시위를 다룬 기사에 “이보다 규모가 크고 중요한 재무성 해체 시위는 언론이 다루지 않는다”는 댓글을 달며 불만을 내비치곤 한다.
왜 하필 재무성인가. 재무성은 ‘나라 곳간’을 총괄하는 부처다. 한국으로 치면 기획재정부와 유사하다. 곳간을 맡은 부처답게 재정건전성을 중시한다. 일본 중앙부처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로 여겨져 소속 공무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무성이 돈을 푸는 데 인색한 것이 시위 참가자들 보기엔 문제다. 긴축을 주장하는 통에 고물가 등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재무성은 세금 감면은 물론, 복지 확대 등 적극 재정에도 부정적이다. 덕분에 더 먹고살기 힘들게 됐다. 일부는 재무성의 이런 행태가 범죄나 다름없다고 보고 ‘죄무성(죄인과 재무성을 합친 말)’이라고 부른다.
‘재무진리교’라는 조어도 있다.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테러를 일으킨 종교 단체 옴진리교에 재무성을 비유한 말이다. 경제평론가 모리나가 다쿠로의 책 <재무진리교-8000만 신자의 거대 종교 단체>가 영향을 줬다. 종교적 도그마에 가까운 재무성의 재정건전성 집착에 ‘국민 전체가 세뇌당했다’는 것이 모리나가의 핵심 주장이다. 그가 보기엔 ‘잃어버린 30년’도 재무성 탓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재무성 해체 주장이 음모론에 기반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위기를 낳은 다양한 원인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은 채 단일한 적을 상정해 불만의 배출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성 해체 시위 측 주장과 달리 실제 일본 재정은 세출이 세입을 웃도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사회보장비 등 증가와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국채 발행이 누적된 결과, 보통국채 발행 잔액은 내년 말 1129조엔까지 불어날 전망이라고 NHK는 전했다.
일부 시위 동조자들은 온라인에서 재무성이 숨겨둔 자산이 13경엔(약 123경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인 약 2557조원을 기준 삼아도 약 481년 치에 해당하는 현실성 없는 숫자다. 시위 현장에서는 “재무성 안에는 일본인이 거의 없다”, “재무부는 미국 ‘딥스테이트’의 하수인이다” 등 허위 정보를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경제평론가 다치바나 아키라는 마이니치신문에서 재무성을 악마화하는 주장이 프리메이슨, 유대인 등에 대한 우려 및 증오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재무성 시위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위 참여자는 주부, 직장인, 자영업자 등으로 다양하다. 재정 지출 감축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일본유신회 지지자부터 긴축 반대 입장인 레이와신센구미 지지자까지 지지 정당 구성도 일정하지 않다. 납세 반대 구호는 신자유주의와 적극 재정 요구는 복지국가 이념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디어론·사회학 전문가인 이토 마사아키 세이케이대 교수는 “많은 사람이 이 운동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면서도 “일본에선 전례가 없는 ‘경제 시위’다. 경시해선 안 될 현상”이라고 말했다.

반재무성 시위 참가자 상당수가 ‘일본인 퍼스트’ 구호를 내건 참정당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특징적이다. 똑같이 세 부담 완화 주장을 내놓는 데다, 세금을 쓴다면 일본인을 위해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공감대가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짚었다. 참정당은 지난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세 단계적 폐지, 사회보험료 재검토 등을 통해 46.2%(2025년 전망치)에 달한 국민부담률을 35%까지 낮추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령층에 집중돼온 재분배가 청년층의 ‘납세 효능감’을 해친 것도 이들 주장의 인기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감세 주장과 배외주의는 기성 정치권을 향한 분노로 수렴한다. 재무성 해체론에 동조하는 이들은 ‘이시바 퇴진’, ‘자민당 해체’ 등의 구호도 함께 내놓곤 한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도 이들의 적이다. 이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소비세 감세를 주장했지만, 여당이던 2012년엔 소비세율을 10%로 높이는 안에 동의했던 ‘증세파’라는 것이다. 입헌민주당은 다문화 공생을 중시하는 정당이기도 하다.
신생 정당 일부는 재무성 해체론에 힘을 실었다.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 다카이 다카시 레이와신센구미 간사장 등 정치인은 감세 공약을 재무성이 방해한다는 식의 주장을 온·오프라인 연설 등에서 여러 차례 내놨다. 책 <음모론>을 쓴 하타 마사키 오사카경제대 교수는 “음모론은 대체로 나타나자마자 사라지지만,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가 ‘꼭 거짓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호응하면 단숨에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군소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보인다”고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짚었다.
아사히신문은 참의원 선거 직전인 7월 18일자 사설에서 음모론과 배외주의의 결합, 기성 정치에 맞서는 포퓰리즘과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적 행태는 모두 미국, 유럽, 한국 등 전 세계적 흐름이라며 표심의 향배에 주목했다. 선거 결과는 참정당과 국민민주당의 약진이었다. 집권 자민당의 ‘실정’은 심판받았다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재무성 해체 시위 참가자들은 다음번 시위를 또다시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