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한눈에…이 장면, 한 달밖에 못 봅니다

2025-03-31

75세 겸재 정선(1676~1759)은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뒤 물기 어린 인왕산 정경을 빠른 붓질로 그렸다. 이건희컬렉션 전시 때마다 관람객들이 가장 실견하고 싶어한 국보 ‘인왕제색도’(1751)다.

바로 옆에는 국보 ‘금강전도’가 걸렸다. 금강산은 겸재의 시작과 끝이다. 35세 첫 금강산 여행 때 꼼꼼하게 사생한 ‘신묘년풍악도첩’(1711)을 시작으로 만년에는 과감한 생략으로 화풍의 변화를 보여줬다. 그림은 그 중 백미, 겨울 금강산인 개골산이다. 푸른색 선염이 잔잔히 번진 맨 위 비로봉부터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한눈에 내려다보게 그렸다. 리움미술관 조지윤 소장품연구실장은 “겸재는 '조선의 색채 마술사'라 할 만큼 색을 잘 썼다. '금강전도'는 ‘갑인동제(1733년 겨울에 題하다)’라는 제발(題跋·발문) 때문에 50대 겸재의 그림으로 오해받지만, 70대 원숙기 화풍이다. 제발은 후대 사람이 쓴 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에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겸재의 대표작 두 점이 나란히 걸렸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일부터 열리는 ‘겸재 정선’이다. 18개 기관 및 개인들로부터 165점을 모았다. 겸재 전시로 역대 최대 규모, 보험가액만 1000억 원대다. 위의 국보 2건에 보물 7건, 부산시 유형문화재 1건이 나왔다. 특히 ‘인왕제색도’는 5월 6일까지만 전시한다. 고서화 보호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돌아간 뒤 11월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박물관을 시작으로 3년간 이건희컬렉션 해외 순회전에 출품된다. 몇년 내 ‘인왕제색도’를 국내에서 볼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5월 7일부터 이 자리에는 가을 금강산을 그린 보물 ‘풍악내산총람’이 걸린다.

겸재는 조선 회화의 전성기에 우뚝 선 봉우리다. 중국 화본을 모방해 이상화된 관념 산수를 그리던 풍조에서 벗어나 우리 산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우리네 모습을 담았다. 진경산수화를 확립, 후대로 확산했다. 회화의 전성기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 걸출한 화가들로 이어졌다. 민화와 지도에서의 도약 또한 겸재의 영향이었다.

겸재는 서울 장동에서 태어나 평생 살았다.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ㆍ효자동 일대다. 세도가들이 살던 곳으로, 안동 김씨 일파는 자신들을 '장동 김씨'라 일컬었을 정도다. 겸재는 자신과 후원자들이 살던 이곳 여러 명소를 진경산수에 담았다. 75세에 그린 '장동팔경첩'(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과 80대 초반의 '장동팔경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도 함께 전시됐다.

이렇게 평소에 보기 어려운 그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66세 겸재가 임진강 적벽에서 뱃놀이하고 그린 ‘연강임술첩’(1742)이 그렇다. 총 세 벌을 그려 자신이 한 점 갖고, 연천현감 신주백과 관찰사 홍경보에게 나눠줬다. 한 점은 행방을 알 수 없고, 홍경보본과 겸재 소장본만 남았다. 각각 개인 소장품이라 전시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는데, 처음으로 함께 걸려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됐다. 초본으로 보이는 겸재본은 빠르고 현장감이 강하다. 하나라도 더 기록해두려 한 듯 나룻배 기다리는 사람들, 횃불을 밝혀 든 사람 등의 묘사도 자세하다. 홍경보본은 이보다 유려하고 정제돼 있다.

1000원권 지폐 뒷면 도안에 쓰인 ‘계상정거’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황의 도산서당(도산서원의 전신) 정경으로 보물 ‘퇴우이선생진적첩’ 속 그림이다. 퇴계 이황 친필 ‘회암사절요서’와 송시열의 발문이 담긴 서화첩이다. 퇴계의 서문은 손자 이안도, 외손자 홍유형, 사위인 박자진에게로 이어졌다. 퇴계의 글을 송시열에게 보여주고 발문을 받은 박자진이 바로 겸재의 외조부다. 겸재는 가문에 자부심을 갖고 이 서첩에 네 폭의 그림을 추가했다.

몰락 양반의 후손으로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겸재가 드물게 남긴 인물화도 있다. ‘경교명승첩’ 속 ‘독서여가도’나 ‘인곡유거’는 그의 자화상으로도 읽힌다. 책 많은 집에서 독서하는 선비의 모습이다. 문인화가이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탓에 주문 받은 그림을 끝없이 그려야 했던 겸재의 결핍이 거기 있다. 83세로 장수한 덕분에 많은 그림이 오늘에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창립 60주년을 맞는 삼성문화재단이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공동 기획했다. 겸재 탄생 350년이 되는 내년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이어진다.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은 “본격 준비에만 3년이 걸렸다. 겸재의 시기별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 성인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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