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없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2025-10-08

지난달 3일에는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큰 행사가 베이징에서 있었다. 그러나 세계가 기대했던 미래지향적 가치와 희망의 메시지와는 반대로 인류의 장래를 더욱 참담한 상황으로 유도하는 암시였다.

시진핑과 푸틴의 발언과 자세는 지도자로서의 모습과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없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인의 얼굴에서는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아의식도 없고 ‘나의 인생’을 제물로 바친 인간 로봇의 모습이었다. 젊음과 자신의 미래를 빼앗긴 움직이는 인형을 보는 듯했다. 광장을 메운 국민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김정은까지 포함해 저 세 사람의 지도자 밑에서는 그 지도자 이상의 사상과 인간적 가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인상을 남겼다. 김정은 밑의 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죄책감을 숨길 수 없었다.

최근 김정은·시진핑·푸틴 만남

미래적 가치와 희망 못 보여줘

우리도 극한 정쟁에서 벗어나

진실·자유·인간애 진작 나서야

세 사람의 사상과 사회 속에서는 휴머니즘이 사라진 지 오래다. 시진핑은 자신이 제2의 모택동이 되기를 바란다. 중국 공산당은 2000년 전통을 이어 온 정신적 유산을 포기하고, 마르크스·모택동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다시 탄생시키려고 노력했다. 인간과 사회의 기본 가치인 정직과 진실, 정의와 자유, 인간애의 정신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정치와 권력이 사회와 역사의 모든 영역을 이끌어 간다고 믿는다. 모든 학문과 사상의 기본이 되는 인문학을 배제 포기한 지도 오래다. 한 번도 자유와 사랑이 있는 질서 사회에서 살아 본 경험도 없었다. 선진 국가의 위치에서 본다면 더 높은 인생관과 세계질서를 배우지도 체험하지도 못한 지도자들이다. 정신문화와 가치는 사라지고 권력과 무력이면 세계를 점령할 수 있다는 반(反)인륜적 꿈을 그대로 연장한다는 선언도 삼가지 않는다. 그런 지도자 밑에서 그 이상의 국민이 태어나기는 힘들다.

법치 이뤘지만 정신적 미성숙

우리는 어떤가. 국민의 수준은 러시아나 중국보다 앞서있다. 독재정치와 군사정권의 권력 국가를 넘어 법치국가인 민주주의와 자유·정의의 질서를 누리고 있다. 남은 문제는 법치국가를 질서 국가로 성장시켜 국민의 자유로운 정신적 질서가 성숙한 사회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 인간적 가치가 주도하는 선진 국가로 가는 길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사회 지도층이 형성되지 못하고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50년의 세월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선진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중산층과 사회적 지도층이 급선무다. 대학 출신 인구가 많으면서도 사회적 지도자의 자질과 위상을 갖추고 있다는 자부심이 없다. 공직자들이 대낮에 음주운전을 예사로 저지른다. 60대 이상의 어른들까지 사회악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젊은 후진들에게 무엇을 남겨주려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많은 대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아와 인간교육은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학교 교육은 그 목적을 위한 기초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경제적 중산층은 있으면서도 정신적 지도층까지는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더 배울 것이 없고 지금으로 족하다는 교육자나 지도자는 스스로 성장을 포기한 셈이다.

어떤 인간교육이 중요한가. 사람은 모두가 주어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게 되어 있다. 가장 위험한 암적 병폐를 자신과 사회에 남겨주는 주체는 ‘이기주의자’들이다. 이기주의자들은 더 강력한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고 이기 집단을 형성한다. 그 이기 집단들이 대결과 투쟁을 일삼게 되면 그 공동체는 파국을 면치 못한다. 우리가 지금 그런 사회적 죄악을 범하고 있다. 노사가 투쟁해 경제 공동체를 파괴한다. 정당들은 정권을 위해 국가의 운명과 민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사회 지도자가 되면 국가 공동체는 더 성장할 수 없고 국민은 자유와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정치·경제가 모든 문제 해결하지 못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회적 성장의 세 단계를 충족시켜가는 노력이다.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국가의 후진성은 정치와 경제가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르크스 철학 그대로다. 그러나 언제 어느 사회에서나 정치가 사회의 목적이 아니다. 정치의 목적은 경제에 있다는 주장은 수용할 수 있다. 절대빈곤은 인간다운 삶을 불가능케 한다. 그러나 경제가 해결되면 한 단계 더 높은 삶을 지향하는 것이 역사의 순서다. 정신적 가치에 따르는 학문과 문화의 가치다. 기초경제가 채워지면 인간다운 삶의 이성과 윤리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어 있다. 정신문화는 경제의 목적이 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이 없는 사회, 자유와 창조를 스스로 포기하는 국민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 모든 정신적 가치가 사회질서로 채워지는 윤리와 도덕이 필수적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찾아 누릴 수 있는 단계로 성장해 역사의 건설과 완성의 단계까지 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와 권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답고 행복한 삶의 기본 가치와 질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 삶의 개인과 공동체의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한다. 크게 나누면 정직과 진실의 가치, 양심의 자유에 따르는 선의 가치, 인간애의 완성이다. 이 세 가지는 휴머니즘과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다. 모든 공동체에 요청되는 진실·자유·인간애의 정신이 구현된다면 인류의 평화와 희망의 역사가 완성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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