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 3차 대공습…갈림길 놓인 소나무 숲의 미래

2024-11-18

급속히 번지는 소나무 재선충과의 사투 현장

솔숲이 심상치 않다. 남쪽에서 시작된 재선충의 세 번째 공세가 거센 까닭이다. 영남의 일부 숲은 절반이 무너지고, 경기와 강원 북부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방제를 포기한 일본의 전례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실제 그런 상황에 몰린 지자체도 있다. 산림 당국은 총력전에 돌입했다. 이미 몇 차례 대발생의 불길을 끈 전례도 있다. 우리는 솔숲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중북부 잣나무로 번진 재선충

만추(晩秋)의 산색(山色)은 적갈(赤葛)이었다. 지난 11일 오후 춘천으로 가는 길, 서울-양양 고속도로 주변 산은 내내 탁했다. 늦도록 질척인 더위 탓에 가지에 붙은 잎들은 선명한 단풍색 대신 마른 낙엽색으로 변해버렸다. 녹색으로 대조를 이뤄야 할 솔잎마저 듬성듬성 갈변된 채 고개를 떨궜다. 강촌 나들목을 나와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북한강을 건너자 춘천시 서면 당림리에 닿았다. ‘2024년 재선충 방제작업’이라는 펼침막과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방문객을 맞았다.

1988년 처음 발견, 두 차례 대발생 거쳐 2년 전부터 3차 확산 중

부화부터 재산란까지 닷새, 20일이면 한쌍이 20만~30만 마리로

30년간 1400만 그루 고사, 소나무 전체 1%지만 확산 속도가 문제

일본은 70년 방치하다 방제 포기, 충분한 예산 투입 확산 막아야

춘천은 가평과 함께 잣의 주산지다. 잣나무가 침엽수종의 75%를 차지한다. 그런데 지역적으론 영남 남부, 수종으론 소나무로 국한됐던 재선충 피해가 2015년 무렵 경기와 강원도 잣나무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했다. 춘천과 가평에서만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1만7000여 그루가 고사했다. 북부지방산림청 춘천국유림관리소 김덕규 방제팀장은 “올해 감염된 소나무와 잣나무가 4만 그루 정도로 추정된다”며 “현재 이 지역 피해는 ‘경(輕, 1000~1만 그루 감염)’으로 분류됐지만, 올겨울이 지나면 ‘극심(5만 그루 이상 감염)’으로 재분류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겨울이 방제 호기…“예산 좀 달라”

재선충 방제는 등산객과 주민의 신고, 산림청의 예찰로 시작한다. 일단 의심목 신고가 들어오면 예찰단이 현장을 확인한다. 의심목에 QR코드가 인쇄된 인식띠를 두른 뒤 시료를 채취해 전국 20여곳의 1차 진단기관으로 보낸다. 현미경 확인과 PCR(특정 DNA를 증폭시켜 재선충 일치여부 확인) 검사를 한다. 감염이 확인되면 다시 QR 시스템에 입력한다. 이 모든 과정이 임업진흥원에서 개발한 ‘재선충 뷰어 앱’에 등록된다. 현장에선 감염 표시를 따로 할 필요 없이 휴대전화로 QR코드만 찍어보면 상태를 알 수 있다. 전수검사이자 실시간 공유가 이뤄지는 것이다.

감염이 확인되더라도 바로 베지는 않는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예찰과 농약 살포, 주변 나무에 대한 나무예방주사 접종에 집중한다. 10월이 되면 재선충과 매개충이 활동을 마치고 고사목에서 움직이지 않고 겨울을 난다. 이때 벌목해 약품 처리 후 포장재로 덮어 훈증 처리를 하거나 파쇄한다. 이 작업을 4월까지 마치지 못하면 고사목에 웅크리고 있던 재선충과 매개충이 깨어나면서 급속도로 번지게 된다.

벌목 과정에서 주변 산림도 희생된다. 벌목 시공을 맡은 산림이엔지 박영돈 대표는 “전에는 감염목만 베어냈는데,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주변 넝쿨을 모두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산불이 나면 고사목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사례도 여러차례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엔 훈증처리 후 방치하던 고사목을 최근엔 모두 끌어내려 별도의 장소에서 파쇄하고 있다. 결국 운반할 장비가 올라가야 하므로 길을 내야 한다. 당림리 현장도 베어낸 나무 주변 산림이 쑥대밭이었다. 토양도 푸석해지기 마련이다. 폭우라도 내리면 산사태 나기 십상이다.

벌목과 파쇄를 마치면 남은 밑동이 충분히 부식하길 기다려 껍질을 벗긴다. 이걸 남겨두면 또 다른 번식장이 되고 만다. 처음 도착했을 때 들린 전기톱 소리는 마지막 박피 작업을 하는 소음이었다. 모든 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창 작업을 하던 예찰·방제단 소속 장경순(71) 씨는 “좋은 나무들이 말라죽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제발 예산 좀 충분히 배정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선충과 매개충, 2중 표적

이틀 뒤인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 터에 위치한 국립산림과학원을 찾았다. 방제 현장이 재선충과의 교전지라면 이곳은 작전참모본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산림병해충연구과를 이끄는 한혜림 과장은 재선충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과학원 입사 후 국내에 처음 DNA로 감염을 확인하는 PCR 기법을 도입한 전문가다.

재선충은 성충이 1㎜ 정도 크기인 실 모양의 선형동물이다. 선충은 종류가 많다. 토종은 살아있는 나무엔 전혀 해를 입히지 않았다. 반면 1988년 국내에 유입된 북미산 재선충은 살아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만 고사시키는 별종이다. 같은 침엽수지만 리기다소나무나 전나무, 낙엽송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재선충은 실 모양 몸통의 한쪽 끝 머리 부위에 있는 구침(口針·stylet)으로 딱따구리가 나무 쪼듯 세포벽을 쪼아 구멍을 내고 수액을 빤다. 주로 도관(체관과 물관)을 타고 퍼지며 구멍을 내다보니 양분과 물이 지나는 통로가 구멍 숭숭 뚫린 빨대처럼 변한다. 이 틈으로 공기가 들어가 통로가 막히는 현상이 고사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재선충이 알에서 부화해 다시 알을 낳기까지 3~5일밖에 안 걸린다는 점이다.  20일이면 암수 한쌍이 20만~30만 마리로 급속히 불어난다. 감염돼도 당장 외관상 변화가 없다. 나무 꼭대기에 잎이 갈색으로 변하면 이미 나무 전체에 퍼진 상태로, 일주일 안에 고사한다. 한 과장은 “육안으로 확인되는 때는 이미 죽은 상태여서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나무가 죽어 수액을 빨 수 없게 되면 이번엔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곰팡이 균사에 구침을 박고 영양분을 흡수한다. 보통 숙주가 죽으면 감염체는 자양분이 없어 증식도 멈춘다. 그래서 치명률과 전파력은 반비례하는데, 재선충은 이런 조화도 깨버렸다.

재선충의 유충을 여기저기로 옮겨주는 게 두 종류의 하늘소(솔수염, 북방수염)다. 매개충을 전공한 최호일 연구사(임학 박사)는 “원래 하늘소는 수피를 갉아먹지만 산 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재선충이 유입되면서 대표적인 해충이 된 사례”라고 설명했다. 주로 매개충이 고사목에서 알을 낳고 유충으로 있을 때 재선충이 침입한다. 고사목 한 그루에서 하늘소 유충 200여 마리가 월동을 하는데, 방제 시기를 놓쳐 이듬해 5월 우화하고 나면 주변은 초토화된다.

결국 빠짐없이 발견해 빠르게 처리하는 게 방제의 관건이다. 그런데 시료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봐도 재선충과 다른 선충과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과학원에서 개발한 유전자 증폭 검사(PCR) 기법이 필수다. 최근엔 현장에서 판독이 가능한 간이 키트 개발을 마치고 보급을 시작했다. 병해충연구과 손정아 연구사는 한 주 전 전남 곡성 출장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를 간이 키트로 판독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시약에 녹인 시료를 토스터 크기의 증폭기에 넣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손 연구사는 “모든 과정이 휴대전화 앱으로 제어할 수 있고, 재선충 뷰어 앱과도 실시간 연동되기 때문에 시료 이동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예방주사와 살충제도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주사제 역시 과학원에서 개발했다. 종류별로 효과가 2~6년 지속하는데, 가격은 나무당 2000원 수준이다. 다만 감염목 주변에 다 주사하려면 인건비가 문제다. 그래서 예방주사는 주로 보호수나 보호림 주변, 미감염 산림과의 경계선에만 쓴다고 한다. 한 과장은 “최근 페로몬 트랩이나 천적 요법 등 친환경 방제 기법 개발도 진행 중”이라며 “이미 원인과 해법이 나온 만큼 노력하면 확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차 대발생, 반면교사 일본

과학원의 예측과 달리 현장 상황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재선충 감염은 두 차례 대발생 했다. 2007년 137만 그루, 2014년에 218만 그루가 고사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진정세를 보였는데, 2022년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0만 그루에 이어 올해도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3차 대발생이다. 산림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산림의 수종 분포상 소나무는 전체 숲의 25%에 이른다. 개체 수로는 약 16억 그루로 추정된다. 이중 지금까지 1400만 그루가 재선충에 감염돼 고사했다. 전체 소나무 개체의 1% 남짓이다. 하지만 번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올해만 새로 10개 시군구에서 새로운 감염이 보고되는 등 지금까지 146개 지자체로 번진 상태다.

일본의 경우 1905년 처음 감염이 보고됐지만, 원인과 대처 방법을 찾지 못해 70년가량을 방치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적극 방제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 현재는 방제를 포기하고 일부 보호수림을 제외하고는 수종 교체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삼림에서 소나무 비중이 높은 것은 재선충 외에도 걱정거리를 낳는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감염되지 않은 금강송이 고사하는 사례나, 송진이 많아 산불에 특히 취약한 특성도 우려를 키운다. 정부는 재선충과 산불 피해지역에 재조림을 하는 경우 소나무가 아닌 다른 수종을 심도록 유도하고 있다. 산림생태 분야 전문가인 산림과학원 천정화 박사는 “숲의 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속도”라며 “전체 산림의 25%를 차지하는 솔숲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은 다른 부작용도 수반하기 때문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수종인 소나무와의 결별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우리 솔숲은 그 길로 갈라지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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