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를 예견하며 “가까운 미래, 100조 개의 센서가 세상을 읽고 기록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예측이다. 그보다도 3년 전인 2011년 이미 그는 『3차 산업혁명』에서 에너지 인터넷, 사물인터넷, 분산형 제조가 하나로 엮이면서 산업 지형이 바뀔 것이라 예언했다. 이 예언은 당시엔 다소 비현실적인 전망처럼 들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미래의 한복판에 서 있다. 엔비디아의 가속 컴퓨팅, 테슬라의 자율주행, 팔란티어의 예측 분석, 바이두의 AI 도시 실험은 모두 이 거대한 센서의 시대가 어떻게 비즈니스와 사회를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실증하고 있다.
미래 예측은 사치가 아니라
조직철학과 감각의 실험대
과거의 성공 찬사를 넘어
미래 읽는 인문적 감각 필요

억만장자 벤처투자자이자 팔란티어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2014년 그의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혁신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독점에서 나온다”고 선언했다. 독점만이 혁신을 이끈다는 이 선언은 지금 팔란티어의 비즈니스 모델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공공 데이터, 군사 정보, 의료 데이터까지 국가의 가장 민감한 정보를 읽고 해석하는 이 기업은 데이터가 무기가 된 세상에서 ‘국가의 눈’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는 그래픽 칩셋이라는 틀을 넘어 데이터의 흐름과 감각의 해석 자체를 바꾼 기업이 되었다. 단지 기술이 진보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사고의 방식을 바꾸었다. 엔비디아는 IT의 중심축을 ‘연산력’으로 옮겼고, 팔란티어는 ‘데이터 해석’으로, 바이두는 ‘미래 교통’으로 전환시켰다. 중국은 특히 눈여겨볼 만한데, 모방국으로 치부하던 나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측된 미래를 집단적으로 실현하는 능력에서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다. 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도시 전체의 디지털화, 국민 건강을 예측하는 AI 헬스케어 시스템이나 물류 자동화 등 기술을 국가 전략으로 끌어올렸다. 이른바 데이터 독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측을 관망하지 않고 그 예측에 맞춰 업의 구조를 바꿔냈다는 점이다. 단지 새로운 부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 체계, 데이터 기반의 판단 문화, 가장 중요한 실패를 견디는 리더십 구조까지 재설계했다. 반면 예측의 신호를 감지했음에도 여전히 기존의 운영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은 지금도 과거의 언어로 미래를 번역하려 애쓴다. 하지만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문법을 요구한다. 기술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언어·철학, 그리고 조직의 감각이다. 과거의 성공은 경험이라는 자산인 동시에 관성이라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미래예측은 사치라고 여긴다. 늘 급한 현실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석적인 예언은 때로 훌륭한 사업계획서가 된다. 미래는 선견지명이 있는 자에게 친절한 법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지금 세상은 예측을 미리 보고 준비한 자가 현실을 주도하는 시대다. AI가 진짜 세상의 언어를 배울 것이라 믿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십수 년 만에 예언은 예산으로, 비전은 시장점유율로 바뀌었다. 미래는 언제나 과거의 진심을 시험하러 온다. 준비된 자에게 예언은 흘러가는 말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리프킨을 비롯해 레이 커즈와일, 앨빈 토플러, 케빈 켈리와 같은 이들은 인간의 지각이 닿기 전의 세계를 먼저 언어로 불러내 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을 설파하지만 본질은 사회 구조의 변화, 인간의 역할, 그리고 지금 바꾸지 않으면 늦는다는 메시지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시대의 중심축이 움직이고 있다. 판이 바뀌는 중이다. 산업의 표준이라 믿었던 것들이 기술에 의해 갱신되고 있고, 시장 선도 기업이라 불렸던 곳들이 경로 의존성에 갇혀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성공이 레거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고, 매출도 나오고 있으며, 고객도 아직 이탈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조직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감지하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레거시는 죄가 아니다. 방치가 죄다. 방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몰라서가 아니라 움직일 수 없어서다. 뚜렷한 철학 없이는 어느 쪽으로도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없기에 현상유지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경우가 많다.
철학 없는 기술은 방향 없는 속도를 낳고, 철학 없는 조직은 예측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기술보다 먼저 바꿔야 할 건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언어다. 기술을 아는 사람만이 아니라, 기술을 읽어낼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인문학적 사고가 더 절실하다. 미래예측의 실현은 기술적 역량이 아니라 조직의 감각과 언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는 무리해 보였던 예측이 지금은 늦어 보인다. 미래는 늘 먼저 도착해 있다. 늦게 오는 건 항상 인간의 결단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