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통신 세계 으뜸 중국, 양자컴퓨터도 미국 맹추격

2025-04-13

“쓸만한 양자컴퓨터는 앞으로 20년 뒤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뱉은 이 한 마디에, 나스닥에 상장된 양자 컴퓨팅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추풍낙엽처럼 추락했다. 같은 시각 중국에서는 2017년 설립된 양자컴퓨터 기업 오리진 퀀텀(本源量子)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72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오리진 우콩’(本源悟空)을 공개하며 국내 시장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우리 눈앞에서 미·중의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세계 기술패권의 판도를 뒤엎을 양자정보 혁명이 중국에서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양자통신 DNA, 양자컴에 이식

국가 주도로 양자컴 파격 지원

중국과학원·과기대 등 성과 내

양자굴기로 또다른 패권 주도

양자컴에서 재현되는 딥시크 쇼크

미국의 정보기술재단(ITIF)은 지난해 9월 중국이 양자 통신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는 미국 대비 상당한 기술격차를 지닌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양자 컴퓨팅 분야의 상위 10대 기업 순위에 중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이 양자통신 분야에서 이룬 기술 굴기의 DNA가 양자 컴퓨팅 분야로 서서히 이식되고 있는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중국 양자기술의 수도라 불리는 허페이(合肥)에서 중국과학기술대학의 양자정보기술 연구진들이 놀라운 성과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과학원은 퀀텀 씨텍과 공동 개발한 504큐비트 양자컴퓨터 ‘톈옌(天衍)-504’를 출시하며 IBM이 2023년 발표한 1121큐비트의 콘도(Condor)를 맹추격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연구진이 105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주총즈(祖沖之) 3호’를 공개하여 지난해 12월 구글이 공개한 105큐비트의 윌로우에 도전장을 던졌다. 연이어 빠르게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추격하고 있는 중국 양자 컴퓨팅 굴기의 배후에는 중국 양자통신의 아버지 판지엔웨이(潘建偉·55) 교수의 연구그룹이 있다.

2017년 중국과학원 양자정보중점실험실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오리진 퀀텀은 자체개발한 오리진 우콩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무료로 공개하며 ‘퀀텀 딥시크 쇼크’를 예고하고 있다. 1년 만에 2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것도 놀랍지만,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글로벌 명문 공대가 약 5만 건의 사용 신청을 했다는 점은 더 주목할 만하다. 오리진 우콩은 전통적으로 양자 컴퓨팅과의 정합성이 높은 생명공학 연구에 이어, 대형언어모델(LLM)의 경량화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안후이성 양자컴퓨팅 공정연구센터는 올해 4월 오리진 우콩을 사용해 파라미터 수를 76% 줄이고, 성능은 8.4% 향상시키는 획기적 경량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인공지능 업계가 오랫동안 풀고 싶어했던 GPU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불확실성 감내하는 중국 정부

높은 불확실성과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양자 컴퓨터 연구개발은 대다수 국가와 기업에 큰 부담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알리바바·바이두를 비롯한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최근 들어 연이어 양자 컴퓨팅의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국가 차원에서 감내하고 전폭적인 중장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14차 5개년 계획에서 양자정보기술을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하고, 강력한 지원을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 정부가 양자정보기술 분야에 투입한 공공 예산은 우리 돈 약 2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올해 양회 이후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양자·수소 등의 전략기술 분야 혁신 기업육성을 위해 200조원 규모의 ‘국가창업투자인도기금’ 설립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중국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중요한 기술에는 한 번에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과학기술 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이뿐 아니다. 2020년부터 중국 교육부의 고등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주요 대학에 약 60개의 양자정보기술 전공 및 교육 프로그램이 신설되었고, 이 대학들에서 배출된 중국의 토종 양자정보기술 인재들은 앞으로 제2의 판지엔웨이가 되어 중국 양자 컴퓨팅 굴기의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막대한 정부 투자와 연구자 수에 마음이 급하지만, 우린 후발주자로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배울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배울 수 없는 것을 냉철히 구분해서 신중하게 기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첨단 제조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 기존의 양자 통신 분야에서 역량을 갖춘 대기업이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방식, 그리고 국가 공공 연구 자원을 집대성한 연구단의 딥테크 창업을 지원하는 방식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인공지능에서 로봇으로 이어지는 기술혁명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게임 체인저인 양자정보 기술이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중국의 양자 굴기는 단순한 추격을 넘어 미래 패권의 또 다른 지각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오는 6월 출범할 새 정부도 차분하지만 확실하게 대한민국의 기술주권 강화를 위한 양자정보기술 전략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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