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 여성이 이송용 침대에 누운 채로 병원을 찾아왔다. 1년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했지만, 암이 다른 장기로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였다. 그는 암 말기였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충격을 받을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치료받던 병원에선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다고 했어요. 교수님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보호자들의 얼굴이 간절해 보였다.
박광우(가천대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역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박 교수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환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라”고 조언했다. 설사 환자가 모든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그 또한 환자의 뜻이었다.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보호자들의 부탁을 받고, 박 교수는 대신 환자를 마주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현재의 상태를 설명했다. “제가 얼마나 살 수 있죠?” 환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하게 물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집으로 가고 싶어요.”

박 교수는 “죽음은 당사자나 보호자 모두에게 벅찬 선고”라고 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잘 마무리하려면 환자가 자신의 치료를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남은 삶을 살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박 교수는 신경외과·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동시에 취득한 더블보드(2개 전문의 자격 취득) 의사다. 난치성 질환인 파킨슨병과 치매, 말기암 환자를 20년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폈다. 환자 중에는 신체적·경제적 고통 속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생사를 오가는 이들을 치료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죽음 공부』(흐름출판)란 책도 펴냈다.
한 달에도 10명 이상의 환자를 떠나보내는 박 교수에게 잘 죽는 것, 웰다잉(well-dying)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태어난 건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박 교수가 마음으로 기록한 죽음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4000명의 죽음 보고 깨달은 것
📌 내일 죽는다면, 오늘 후회 없이 살기
📌 “아들아” 말기암 환자의 특별한 작별인사
📌 추억: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법
📌 ‘가생비’(가격 대비 생존율)의 딜레마
📌 적극적 안락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000명의 죽음 보고 깨달은 것
의사로 일하면서 죽음을 앞둔 환자를 얼마나 보셨나요?
인턴을 시작한 2003년부터 봤으니까, 약 4000명 될 겁니다. 인턴 때부터 환자 사망선고를 많이 했고요. 이후 난치성 질환인 파킨슨병과 치매, 말기암 환자를 주로 봤어요. 지금도 매달 열 분 이상 환자의 죽음을 보고 있습니다.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게 매번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턴 때, 의사인데 장의사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데 매일 사망선고만 하고 있으니까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환자랑 교감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저는 의사가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받는 분부터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분까지, 여러 환자들을 보면서 삶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