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유치를 놓고 유력한 경쟁자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는 대형 아레나를 포함한 ‘K-컬처 밸리’ 조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BTS 콘서트를 유치하고, 한류 전시를 열고, K-푸드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사막 한가운데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한류 소비가 아니라, K-컬처를 ‘국가 인프라’로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도입하는 대표적 사례다. 문화가 산업을 견인하고, 외교를 대체하고, 도시의 브랜드를 새롭게 쓰는 방식이다
이제 K-컬처는 콘텐츠 자체를 넘어, 도시와 산업, 관광과 기술을 통합하는 종합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새 정부도 최근 콘텐츠 3조 원 투자, 수출시장 확대, K-아레나 건립 등을 잇따라 발표하며 ‘K-컬처 르네상스’를 국가 어젠다로 명확히 설정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2025년 현재, ‘케이팝 데몬헌터스’와 같은 애니메이션 IP가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탑에 오르고, 웹툰 기반의 K-스토리가 전 세계 OTT를 통해 확산되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K-컬처의 본진은 어디여야 하는가?
리야드는 사막에 K-컬처 밸리를 세우고, 오사카는 팬덤의 동선에 맞춰 도시 구조를 재편하며, 방콕은 한류를 교육·투자로 확장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K-컬처를 자국의 공간에 이식하고, 산업과 도시의 문법까지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흐름은 결국, 누가 ‘원류’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콘텐츠 없이 무대는 공허하고, 팬덤 없는 인프라는 껍데기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지’라는 개념이 요구된다. 전 세계가 K-컬처를 자국에 들여와 전략 자산으로 삼으려 한다면, 누군가는 그 흐름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공급할 근원지가 되어야 한다.
전북은 한국의 ‘문화적 뿌리’ 원류이다. 판소리, 한식, 한지, 농악 등 대한민국 문화의 원형이 응축된 곳이며, 전국 최고 수준의 전통문화 자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현대와 조화를 이루며 그 가치를 동시대적 표현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과 역량을 함께 갖춘 곳이다.
또한 전북은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문화·관광·산업의 융합 모델로서 ‘문화올림픽’을 구상하고 있으며, 이는 곧 K-컬처 성지화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문화로 올림픽을 완성하는 도시, 그 중심에 전북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전북은 지금, 전통과 첨단, 창작과 향유가 어우러진 문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단순한 공간과 시설을 넘어, 전북만의 뿌리와 정신을 세우고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K-컬처가 일시적 반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창작부터 체험과 확산까지 전 과정을 담아낼 중심축이 필요하다. 전북은 ‘K-컬처의 뿌리’로서, 이러한 흐름을 아우르는 문화 허브로 성장하며, 한국의 OTT 콘텐츠 시장과 글로벌 소프트파워를 이끄는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특히, 전 세계 팬덤은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가 탄생한 현장을 직접 경험하길 원한다. 이에 전북은 동북아 관문 새만금을 중심으로, K-컬처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글로벌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K-pop 국제도시로 도약할 비전 또한 구체화하고 있다.
전북은 문화의 생산과 향유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정착시키고, 세계에 전달할 K-컬처의 가치와 정신까지 함께 설계해 나갈 것이다.
이제 전북은 과거의 자산에만 기대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를 기획하고, 그 기반 위에 미래를 설계하며 ‘판을 만드는 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K-컬처를 세우는 나라가 있다면, 전북은 그 뿌리 위에 미래를 설계하는 곳이다. 누가 더 많은 자본을 쏟아붓는가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깊고 단단한 문화적 기초 위에 생태계를 세우는가의 싸움이다.
K-컬처의 진정한 본진은 바로 여기, 전북이어야 한다.
노홍석 <전북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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