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니실린이 열었던 항생제의 시대는 이제 슈퍼박테리아라는 새로운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기존의 항생제는 이러한 약물 내성 세균에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퍼박테리아를 무찌르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실험실이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만들고 있다. 이제는 AI가 항생제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됐다.
한때 기적으로 여겼던 약이 있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했을 때, 인간은 드디어 세균이라는 오랜 적에 대항하는 무기를 지니게 됐다. 폐렴, 결핵, 패혈증 같은 병이 페니실린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그 이후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항생제를 앞세워 수많은 생명을 구해왔다.
하지만 세균은 항생제에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 않았다. 쉽게 끝날 것만 같았던 이 전쟁을 세균은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오히려 더 교묘하고 집요한 싸움을 시작했다. 인간이 항생제를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쓴 탓이다. 세균은 살아남기 위해 변했고, 마침내 일부는 인간이 만든 항생제를 비웃듯 견뎌내게 됐다. 우리가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르는 세균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해마다 약 280만건의 항생제 내성 감염을 발표한다. 놀랍게도 이중 3만5000명이 목숨을 잃는다. 전 세계적으로는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연간 수백만명이 사망한다. 병원에서, 수술실에서, 혹은 작은 상처를 치료하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아까운 죽음이다.
우리는 현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슈퍼박테리아와 싸울 것인가? 누가 알렉산더 플레밍의 역할을 할 것인가?
놀랍게도, 힘겨울 것만 같았던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기존에 수행했던 생물학적 검색 방법도, 화학적 합성 방법도 아닌 알고리즘이었다. 생성형 AI가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이 됐다.
사람이 손으로 화학물을 구상해 일일이 그 구조를 그린다면, 하루에 몇개나 완성할 수 있을까? 100개? 1000개?
미국의 한 대학교 연구팀은 꿈속에서나 가능할 일을 현실에서 만들었다. 이들은 무려 3600만개의 새로운 분자를 순식간에 디자인했다. 그런데 연구자들의 손이 아니라 생성형 AI의 머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지금까지 항생제를 개발한다고 하면 자연에서 얻은 물질이나 그 추출물을 가지고 실험을 통해 검색하거나, 기존 화합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달랐다. 새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에게 하나씩 가르치듯, 생성형 AI에게 기존 항생제의 작동 원리와 화학 법칙을 학습시키는 작업을 먼저 했다. 생성형 AI는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수행해”라는 연구자의 명령어 한마디에 완전히 새로운 분자 구조 3600만개를 제시했다. 마치 천재 건축가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서서 독창적으로 미래 도시를 설계하듯 말이다. 생성형 AI는 이 과정에서 단순한 검색기가 아니라 신약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됐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만든 물질 수가 너무 많아 기존 방식으로 후보물질을 하나씩 검증하는 데 지나치게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3600만개 후보군 가운데 항균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후보물질을 기계학습 필터링, 합성 가능성 필터링, 독성 필터링 등의 과정을 통해 추려냈다. 이렇게 고른 최종 후보물질을 실제로 합성해 항균 효과를 검증했다. 놀랍게도 몇몇 분자는 강력한 항생제 활성이 나타났다. 생성형 AI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출발해 실제 실험으로 검증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성과는 앞으로 신약 개발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듯, 생성형 AI에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시대가 올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
AI가 찾아낸 신약 후보 물질은 기존의 항생제와는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화합물이었다. 이게 왜 중요할까?
현재 사용 중인 항생제는 유사한 구조를 가졌다. 주된 타깃이 세균의 세포벽 합성이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세균들은 이미 이런 형태의 공격에 단련돼 있어 오랜 시간에 걸쳐 이것에 대한 대응법을 터득한 것이다. 말하자면 같은 무기로는 슈퍼박테리아와 더 이상 싸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등장한 분자들은 전혀 다른 형태의 무기였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생전 처음 마주하는 낯선 공격이었다. 특히 몇몇 물질은 세균의 세포막을 직접 흔들었다. 세포막은 세균의 생존을 지탱하는 중요한 방어선이다. 이걸 무너뜨리면 버틸 수가 없다. 에너지 대사도, 물질 출입도 모두 멈춘다. 이런 방식은 기존의 항생제와 다른 목표를 겨냥한다. 그만큼 당장은 내성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다. 한마디로 지금은 세균이 대처법을 찾기 힘든 방식이다.
연구진은 생성형 AI가 만든 이 신무기를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상대는 임질균(Neisseria gonorrhoeae)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MRSA)이다.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슈퍼박테리아다. 이들은 기존 항생제가 거의 듣지 않는 무서운 병원균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생성형 AI가 만든 분자 앞에서 임질균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생성형 AI로 만드는 새로운 방식과 물질이 슈퍼박테리아 치료제 개발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그동안 익숙했던 길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이 골치 아픈 문제가 이제는 낯선 방법으로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시험관 속에서 슈퍼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약이 되려면 몸 안에서도 효과를 보여야 한다. 더구나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작동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팀은 생성형 AI로 만든 항생제를 쥐에게 투여했다. 시험관을 벗어나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수행한 실험이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AI가 설계한 물질이 쥐에서 슈퍼박테리아 감염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다. 생성형 AI가 만든 물질이 치료제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비록 아직은 전임상 단계의 결과에 불과하지만, 이번 연구는 사회적 파장이 크다. AI가 설계한 이 치료제가 기존의 항생제 개발 방식이 넘지 못한 벽을 넘었다. 어쩌면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슈퍼박테리아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정호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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