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기여를 축소하겠다고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자마자 주요 국제기구에서 발을 빼는 등 고립주의 기조를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계기로 중국이 미국의 빈자리를 파고들며 주요 현안에서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유엔총회는 24일(현지 시간) 2025~2027년 정기 예산의 국가별 분담금 비율을 조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분담률 1위인 미국의 경우 22%로 변동이 없다. 반면 2위인 중국의 분담률은 20.005%로 기존(2022~2024년 적용) 대비 4.75%포인트나 인상됐다. 중국의 분담률이 20% 선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은 3위를 지켰지만 분담률이 기존 8.033%에서 6.930%로 하락했다. 닛케이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에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까지의 경제 상황이 반영됐다”며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라고 짚었다.
유엔 재정 분담률은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의 위상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로 꼽힌다. 분담률은 3년마다 각국의 국민총소득(GNI) 등 경제지표를 토대로 재조정된다. 분담률이 높을수록 유엔에서 다루는 각종 의제에 대한 발언권도 강해진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최고 분담률(상한선 22%)을 부담하는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나가고 있다.
중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출자할당액 지분율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출자할당액 지분율은 IMF가 의결권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5년마다 재조정된다. 현재 IMF 지분율 1위 역시 미국(17.42%)이며 일본(6.47%), 중국(6.40%), 독일(5.59%) 등이 뒤를 잇고 있다. IMF의 지분율은 국내총생산(GDP)과 경제 개방성·변동성, 외환보유액 등을 고려해 산출된다. 지난해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지분율 재조정이 이뤄질 경우 중국(14.4%)은 미국(14.8%)과 비등한 수준을 형성할 것으로 추산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립주의가 심화하면 그 틈을 노려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행보가 더욱 노골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그간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부담해온 역할과 분담금에 큰 불만을 표해왔다. 그는 유세 기간 세계무역기구(WTO)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파리기후협약 등에 대한 탈퇴 의사를 시사했다. 최대 출연국인 미국이 이탈할 경우 주요 국제기구와 협약은 존폐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닛케이는 “유럽과 일본 등이 미국의 몫을 보충하기는 어렵다”며 “중국이 영향력을 더 확대할 여지가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