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우승은 맛피아지만 주인공은 이균”

2024-10-09

“나에겐 에드워드라는 미국 이름이 있지만, 한국 이름도 있어요. 우리 부모가 지어준 이름, 나의 한국 이름은 균(kyun) 입니다. 그래서 이 요리는 이균이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음식 먹으면 항상 너무 많이 줘서 항상 배부르고 다 못 먹어요. 그래서 떡볶이를 시키면 항상 떡이 2~3개 남아요. 저는 그게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풍족함과 사랑,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이것이 바로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3개의 떡볶이로 디저트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8일 공개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 마지막 회에서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 셰프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결승전 요리 소개를 하며 한 말이다. 스스로 한국어 실력이 초등학생 정도라고 밝힌 그는 삐뚤빼뚤한 한글 글씨로 적은 종이를 펼쳐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요리에 대한 진심을 전했다.

‘흑백요리사’는 기본적으로 무명 셰프가 유명 셰프에게 도전하는 서바이벌이다. 흙수저가 우승을 차지하면 프로그램 내내 불렸던 별명 대신 자신의 본명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다는 베네핏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내심 흑수저가 백수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기대한 만큼, 결승전에 앞서 나폴리 맛피아가 자신의 본명 ‘권정준’을 공개하자 스튜디오는 감격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에드워드 리가 자신의 본명 ‘이균’을 공개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킥’이었다. 많은 이들이 “‘흑백 요리사’의 우승자는 나폴리 맛피아였지만, ‘흑백요리사’의 주인공은 이균” 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에드워드 리는 결승전에 앞서 “저도 다른 셰프들처럼 우승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렇지만 이 곳에 온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한국에 대해,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제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다. 제 요리는 항상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저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경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식당에서 팔고 있는 대표 요리 대신 한식을 접목한 새로 요리를 선보였다. 일대일 미션에선 묵은지와 항정살로 샐러드를 만들었고, 팀전에선 한국 장을 활용한 요리, ‘인생요리’ 미션에선 썰어 먹는 비빔밥, ‘무한 요리 지옥’ 미션에서 선보인 두부요리 컬렉션에 이어 결승전 떡볶이 디저트와 막걸리까지 그의 요리를 나열해보면 모두 한식을 재해석한 것이었다. 주무기를 꺼내지 않고도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들과 대결을 펼친 것이다.

미국에서 오가며 경연에 참가한 탓에 긴 비행 시간과 시차로 힘들 법도 한데 누구보다 집중력과 유머를 잃지 않은 그의 노장투혼에 감동했다는 이들도 많다.

에드워드 리는 미국 요리 경연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 출신으로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안주하지 않고 결승전마저도 한국의 맛과 스토리텔링이 담긴 창작 요리를 선보였고, 이는 ‘젊은 흑수저’인 맛피아가 가장 자신있는 요리인 양고기 요리로 마지막 승부를 본 것과 비교가 됐다.

“저는 30년 동안 요리를 해왔습니다. 지금 제 나이는 대부분의 셰프들이 속도를 늦춰가는 나이지만 전 계속 나아가고 싶어요. 난 여전히 요리를 할 수 있고, 한국에서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에드워드 리)

한 누리꾼은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에드워드 리는 대중 예술 마스터하고 추상화 그리기 시작한 피카소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는 댓글로 감동을 표했다.

‘흑백요리사’에서 빈 접시를 캔버스 삼아 자신의 인생을 담아 낸 예술가는 비단 에드워드 리 뿐만이 아니었다. 100명의 요리사 모두 대한민국에서 줄 서는 식당의 셰프들로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릴 필요가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도전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와 실력을 당당히 증명하고, 셰프라는 직업을 세상에 다시 한번 알렸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지난달 17일 공개 후 3주 연속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애초 여경래, 최현석 등 심사위원일법한 셰프들이 ‘백수저’로 경연에 참가하고, 백종원 대표와 국내 유일 미슐랭 쓰리 스타 안성재 셰프가 심사위원을 맡아 화제몰이를 했다. 오직 맛 만으로 음식을 평가하는 ‘눈가리개 심사’와 그로 인해 창출된 각종 밈, 출연자 악플 논란, 팀 미션 수행 도중 불거진 ‘왕따’ 논란 등도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화제성을 누른 것은 거장의 인생 스토리였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