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투박한 화물차 뒤 ‘왕눈이 스티커’
교통안전은 물론 흐뭇한 미소까지
프랑스의 문학가 미셸 투르니에가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와 함께 작업한 사진집 『뒷모습』에 적힌 글이다. 등이 곧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뒷모습부터 거친 삶의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뒷모습, 정원 가꾸기에 몰두한 노인의 구부정한 뒷모습, 호기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이의 뒷모습까지. 책 속 각각의 뒷모습에선 사랑과 존경, 슬픔과 에너지, 존경과 호기심 등 다양한 감정이 읽힌다.
이 책이 새삼 기억난 것은 도로 위 부리부리 왕눈이들 때문이다. 대형 화물차들을 비롯해 소형 승용차들까지 후면부에서 빛나는 저 왕눈이들의 정체는 뭘까. 일명 ‘왕눈이 스티커’라 불리는 이 눈 모양은 2020년 한국도로공사가 화물차 후미 추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개발·보급한 것이다. “눈 모양의 반사지 스티커로, 주간에는 후방 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스티커로 유도하고, 야간에는 전조등 빛을 약 200m 후방까지 반사시켜 전방 주시 태만, 졸음운전을 예방한다”는 게 개발 이유다.
2017년부터 19년까지 3년간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후면부 추돌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약 40%이며, 특히 이들 중 61%가 야간에 발생했다고 한다. 후미 추돌의 원인은 졸음이나 주시 태만이 대부분이며, 야간에는 전방 시인성 또한 좋지 않기 때문에 발생빈도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로공사는 2019년 6월부터 3개월간 부산·경남지역 100명의 고객체험단을 대상으로 ‘왕눈이 스티커’를 시범 운영했고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 4월부터 전국 휴게소에서 화물차·버스를 대상으로 스티커 무상 부착 운동을 진행했다.
이 스티커 아이디어는 영국에서 시행한 한 실험에서 얻었다고 한다. 무인 판매대 하나는 사람 눈을 부착했고, 다른 하나는 그냥 꽃 그림을 붙인 결과, 사람 눈 스티커를 붙인 판매대에서 2.8배에 달하는 돈이 더 걷혔다. ‘감시의 눈 효과’ 현상이다.
스티커 하나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경각심이 들까. 처음에는 의심도 들었지만 실제로 앞차 후면부에서 눈을 반짝이는 왕눈이를 본 순간 피식 웃음이 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일본 등 동양에서 인기 있는 ‘헬로 키티’ 캐릭터가 서양에선 잘 안 먹히는 이유가 바로 상대의 얼굴을 보면서 감정을 읽는 방식이 동양인과 서양인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인은 주로 상대의 입을 통해 감정을 읽고, 동양인은 주로 상대의 눈을 통해 감정을 읽는다. 그러니 앞차에 붙은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무심히 지나칠 순 없다.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왕눈이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진 걸 보면 ‘내돈내산’ 운전자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경찰차 후미에도 포돌이 눈이 붙어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7000원이면 다양한 표정의 ‘왕눈이 스티커’를 살 수 있다. 눈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모양도 있고, 쌍꺼풀이 짙은 모양도 있다. 어떤 차주는 매직으로 동그란 눈알 주변에 잘 말아 올린 속눈썹을 직접 그려 넣었다. 투박하고 거칠게만 느껴졌던 대형 화물 차량들에서 의외의 수줍은 뒷모습을 발견했다고 할까. 저 귀여운 눈망울들을 보면 운전이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진다. 이런 게 생활 속 작은 디자인의 힘이 아닐까.
우리 정치인들의 뒷모습에서 언제쯤 신뢰와 존경심을 읽게 될지 궁금해지는 건, 사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