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계열사 지분을 팔았나···재벌이 상속세를 내는 법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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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그룹 지주회사인 엔엑스씨(NXC)는 “넥슨 창업자인 고 김정주 회장의 배우자 유정현 이사회 의장 일가가 약 6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모두 납부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김 회장이 2022년 2월 사망한 지 약 2년반 만이다. 10조원 가량을 상속받은 유 의장과 두 딸은 6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규모인 만큼 어떻게 세금을 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총수 일가는 상속·증여세를 분할 납부했다.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세금을 한 번에 내는 것이 부담인 만큼 5년 동안 세금을 내는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했다.

신세계그룹도 2020년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했다. 당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어머니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에게서 받은 지분에 대한 증여세 2962억원을 5년간 나눠서 내겠다고 했다.

‘고액 배당’ 받고 비핵심 계열사 지분 팔아

5년 동안 나눠 내더라도 수천억원의 상속세는 재벌에게도 부담이다. 이때 주로 동원되는 방법이 배당금이나 주식담보대출, 자회사 지분 매각이다. 정 회장도 2021년 광주신세계 지분 전량을 매각해 2285억원을 확보했다. 지분 매각 대상이 신세계였던 만큼 지배구조 개편 효과도 동시에 누렸다. 광주신세계는 매출액 대부분이 백화점에서 발생하는 사실상 정 총괄사장 소관이었다.

수백억원대의 배당금도 상속세 부담을 덜어줬다. 지난해 정 회장은 2022년에 이어 배당금으로 280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지만, 2022년과 같이 1주당 2000원을 배당하기로 결정하면서 정 부회장의 배당금 규모는 유지됐다.

효성그룹도 고액의 보수와 배당금이 상속세 재원으로 쓰일 전망이다. 올해 별세한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보유한 효성그룹 계열사의 지분가치는 약 7162억원으로 추산된다. 현행법상 상속세의 최고세율 50%에 최대주주·특수관계인의 주식 상속에 붙는 20%의 할증을 고려하면 약 4000억원의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명예회장의 자녀인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효성으로부터 각각 약 68억원, 57억원의 연봉을 지난해 받았다. 이들 형제는 ㈜효성에서 지난해 각각 139억원과 135억원씩 등 273억원의 배당도 받았다. 계열사에서도 배당금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이들 형제가 최근 5년간 보수와 배당금을 통해 마련한 재원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효성그룹이 2개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지분 매각을 통해 추가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

상속·증여를 받기 전에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있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비상장사를 주로 활용한다. 김동관 한화 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로보틱스 부사장 등 총수 일가 3형제가 지분을 100% 보유한 한화에너지는 꾸준히 ㈜한화 지분을 매입했다. 이를 통해 한화에너지는 지주사 격인 ㈜한화 지분 14.9%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3형제 입장에서는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매입할수록 그룹 지배력은 커진다. 3형제가 직접 ㈜한화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방안도 있지만, 막대한 자금이 드는 점을 고려하면 한화에너지를 통해 지분을 사는 것이 부담이 덜하다.

과거에는 총수 일가가 지배한 비상장사를 주력 계열사와 합병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 이후, 이같은 방안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총수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병 비율 산정이 주주의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든 뒤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다. 정부도 기업 간 합병과정의 공정성을 재고하기 위해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개선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넥슨 총수 일가는 2022년 고 김정주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지주사 지분 매각’이라는 선택지를 피하지 못했다. NXC는 넥슨그룹 지배구조 꼭대기에 있는 지주사로, 그룹 지배구조는 엔엑스씨→넥슨(넥슨재팬)→넥슨코리아로 연결된다. 막대한 규모의 배당금이 나올 곳도, 핵심 사업을 영위하는 비상장사도 없는 만큼 넥슨 총수 일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넥슨 총수 일가는 지주회사 NXC 지분 29.3%(85만2190주)를 기획재정부에 물납하는 방식으로 4조7000억원을 냈다. 상속세는 현금으로 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속 재산을 현금화하기 어려우면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대신 내는 물납이 허용된다. 여기에 총수 일가는 최근 수천억원대 잔여 상속세를 내기 위해 NXC 지분 추가 매각에 나섰다.

그러나 지분 매각에도 총수 일가 지배력에는 큰 영향이 없다. 추가 지분을 팔더라도 총수 일가 지배력은 기존 69.98%에서 64.68%로 줄어드는 데 그치고, 주식을 매입한 곳도 NXC다. NXC가 자사주를 소각한다면 총수 일가 지배력은 다시 올라가게 된다. 실제 NXC는 11일 자사주 소각에 나서 총수 일가 지분율은 67.67%로 증가했다. 총수일가 입장에서는 지배력은 유지한 채 상속세를 납부할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회사 측은 이번 감자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전량 소각”이라고 설명했다.

넥슨의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총수 일가 가족회사인 ‘와이즈키즈’도 역할을 했다. 김정민·정윤씨는 NXC에 지분을 판 돈으로 3200억원 규모의 와이즈키즈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유 의장은 지난달 31일 해당 액수만큼을 와이즈키즈로부터 이자율 4.6%로 빌렸다. 유 의장은 NXC로부터 받은 3203억원과 와이즈키즈로부터 빌린 3200억원으로 상속세를 모두 납부했다.

와이즈키즈는 김 회장의 자녀인 김정민·정윤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피규어나 휴대폰 거치대를 제작하는 이 회사는 최근 주요 사업을 경영 컨설팅으로 바꿨다. 와이즈키즈는 부동산 임대업 알짜 자회사 엔엑스프로퍼티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돈을 빌렸던 만큼, 넥슨 총수 일가는 향후 배당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넥슨은 지난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본시장 브리핑에서 배당 확대를 예고했다. 넥슨이 배당을 확대하면 NXC가 최대 수혜를 입게 된다. NXC는 자회사까지 합쳐 넥슨 지분 48.6%를 보유해 배당액은 최대주주인 총수 일가로 흘러가게 된다.

재계는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의 발목을 붙잡는다며 끊임없이 세율 인하를 주장해 왔다. 이에 정부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를 담은 세법 개정안으로 화답했다. 기업 실적과 무관한 고액 배당과 비상장사를 동원해 세 부담을 줄이려는 관행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닌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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