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거래소가 주식 거래시간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검토 중인 시나리오는 거래시간을 최대 12시간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글로벌 증시 시장의 주식거래 연장 흐름과의 정합성, 투자자 편의성 확대를 내세우지만 업계 안팎의 반응은 뜨겁지 않다.
무엇보다 증권사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형 증권사들은 거래가 늘어날 경우 수수료 수익 증가와 해외 투자자 유입 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중소형사들은 이미 대체거래소(ATS) 대응을 위해 인프라에 막대한 비용을 들였고, 거래시간이 길어질 경우 보안·시스템 유지와 인력 운영에 또다시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문제는 비용뿐만이 아니다. 장시간 거래는 시스템 운영 리스크를 가중시킨다. ATS 출범 이후 다수의 증권사에서 불과 몇 달 사이 반복된 주문 지연과 호가 반영 오류는 경고등을 켜기에 충분했다. 거래소까지 시간 연장에 나선다면 동시호가 처리나 주문 중복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결국 투자자 불편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시장 신뢰의 저하로 직결된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의문은 남는다. 거래 기회 확대라는 명분이 오히려 개인투자자의 과열 매매를 부추기고, 시장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까지 배제하기 어렵다.
거래소가 강조하는 국제 경쟁력이라는 명분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평가할 때 중시하는 기준은 거래 시간이 아니라 투명성과 안정성이다. 해외 주요 연기금과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거래 편의성보다는 얼마나 안정적으로 주문이 체결되는지, 시스템이 얼마나 일관되게 작동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한 번의 오류가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거래 시간이 몇 시간 더 열려 있는지보다 예측 가능한 운영과 사고 발생 시 복구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 평가 요소다. 잦은 오류와 불안정한 시스템을 방치한 채 시간을 늘린다면 단순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로벌 신뢰도를 해치고 투자자 이탈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거래소 입장에서 고민이 깊어질 만하다. 넥스트레이드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랫동안 독점적으로 누려온 거래 수익이 분산됐고, 점유율도 크게 낮아졌다. 줄어든 파이를 만회하기 위한 해법으로 거래시간 연장이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열려 있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투자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다. 거래시간 확대 논의는 시대적 흐름일 수 있지만, 그것이 투자자 이익보다 기관의 이해관계나 경쟁에서 출발한다면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흔들린 신뢰를 되찾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