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농진흥회가 ‘집유조합별 전지분유 배분계획’을 수립·시행하면서 농가·집유조합이 반발하고 있다. 정산대금 일부를 현물로 주겠다는 것인데 낙농업계 부진에 따른 책임을 산지에만 전가하는 꼴이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유 생산 대가가 전지분유?=낙농가가 뿔났다. 최근 원유 구입과 공급을 책임지는 낙농진흥회가 대금 일부를 전지분유로 주겠다고 공표하면서다. 충남지역의 한 낙농가는 “사료비 급등으로 어려운데 판매대금도 못받게 생겼다”며 발을 굴렀다.
진흥회의 ‘집유참여조합별 배분계획’에 따르면 1100여농가가 받게 될 전지분유는 전체 188t(20㎏들이 9400포대) 규모다. 배분량이나 농가당 배분 방식은 조합별로 상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업체에서 보유한 분유를 조합별로 분배한 후 해당 조합이 낙농가에 다시 배정하는 식이다.
일부 집유조합과 농가들은 원유 수급불안에 따른 책임을 일방적으로 생산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흥회에 참여하는 집유조합 관계자는 “농가에 비매품인 전지분유를 나눠주고 기증하거나 자체 소비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강매”라면서 “정부가 내놓은 ‘용도별차등가격제’ 설정 물량을 초과하지 않았는데도 농가가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집유조합 동의한 고통 분담”=진흥회 측은 합의에 따른 것으로 원유 공급과잉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진흥회 관계자는 “올해 원유 수급 상황이 원유 과잉문제가 극심했던 2015년 수준에 근접하면서 급하게 전지분유 배분계획을 짜느라 개별 농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집유조합장 협의회에서 수차례 논의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고, 분기총량제에 따라 원유를 초과 생산한 규모의 비율에 맞춰 분유를 나눠주는 것인 만큼 농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흥회에 따르면 최근 미사용 잉여 원유는 매주 1000t 이상 발생 중이다. 이를 활용해 만든 분유 재고도 1만2000t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6월 정상화 예상되나 장기 처방도 나와야=진흥회와 산지 간 불협화음엔 산업 구조적 문제가 자리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방역 관리다. 전문가에 따르면 국내에서 2023년 10월 소 럼피스킨이 최초 발생하면서 그해 11월 대대적인 백신접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수태 기간이 미뤄지다가 지난해 11∼12월 송아지 출산이 봇물을 이뤘다는 것이다.
한 수의학 전문가는 “보통 젖소가 새끼를 낳으면 유량이 2배가량 증가하는데 지난해말 럼피스킨 백신 영향으로 수태 기간이 지연돼 원유 수급 조절이 잘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올들어 유업계에 닥친 잇단 악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한 대형마트 유제품 유통 담당자는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우유를 포함한 유제품 판로가 위축된 데다 올초엔 모 유업체의 ‘멸균유 내 세척수 혼입문제’까지 불거지며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전지분유 배분 파동은 6월초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젖소 유량이 감소하는 대신 우유 소비는 반등할 것”이라면서 “6월로 접어들면 낙농업계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 낙농조합 관계자는 “단기 처방만 내릴 게 아니라 정부와 진흥회는 수급조절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한편 학교·군대 등 우유 대량 소비처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