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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만화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격주 금요일 오후 찾아옵니다.
매 끼니를 잘 챙겨드시는 편인가요? 전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면 늘 대충 때우는 편입니다. 새해가 되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는 간단하게나마 ‘식사일기’를 써보는 것이었어요. 기록을 하면 조금 건강한 식생활을 할까 싶어서요. 결과적으로는 딱 일주일 하다가 중단했습니다. 막상 하루종일 먹은 것을 쓰다보니, 그나마 챙겨먹은 끼니가 너무 부실하게 느껴져 기록할 마음조차 사라졌거든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뚝딱뚝딱 화려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예쁘게 사진까지 찍어 ‘인증’한 사진들을 보면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이 웹툰을 보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번 ‘오늘도 툰툰한 하루’에 추천할 웹툰은 서모람 작가의 <차린 건 없지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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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없지만>은 작가의 일상·생활 웹툰입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작가가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요리 이야기입니다.
사실 요리, 음식을 소재로 한 웹툰은 차고 넘칩니다. 요리에 취미가 있는 작가가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녹여낸 일상툰부터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식당에서 요리를 하는 판타지 웹툰까지 수도 없이 많죠. 장르도 내용도 다른 이 만화에 공통점이 있다면 작가가 꽤 요리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차린 건 없지만>은 조금 다릅니다. 서 작가는 ‘식사 대용 알약’이 빨리 개발되길 바랄 정도로 밥 차려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만화 제목인 ‘차린 건 없지만’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 상대에게 음식을 권할 때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할 때 쓰는 겸손의 의미가 담긴 말이 아닙니다. 정말 차린 게 별로 없습니다. 1화 ‘수프에 밥’을 볼까요. 집에서 ‘루’(스프의 베이스로 쓰이는 밀가루와 버터를 볶은 것)를 만들어 스프를 끓이는 장면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작가는 물만 넣으면 스프가 되는 인스턴트 스프에 먹다 남은 찬 밥을 말아 한 끼를 해결합니다. 총 102개 회차 중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100개 회차가 모두 작가가 해먹은 음식 제목인데, 다 비슷합니다. 3화 ‘어묵탕’은 마트 할인 코너에서 소비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50% 할인하는 어묵탕 키트를 끓여 먹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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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공식품만 나오진 않습니다. 아무도 먹지 않지만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명란젓을 처리하기 위해 명란마요김밥을 만들고, 뚜껑을 뜯은 채 방치해뒀던 참치를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참치마요김밥을 만들기도 하죠. 어떤 회차는 직접 해먹은 것이 아니라 밖에서 먹은 것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만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 ‘걱정’ ‘응원’ ‘공감’ 네 가지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부실한 식생활을 걱정하는 ‘충격과 걱정’ 반응이 가장 많았지만, ‘이 정도면 진짜 잘 차려먹는 것 같다’는 공감의 반응도 약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넷 중에는 ‘공감’에 해당하는 사람이네요.
훌륭한 요리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도파민 터지는’ 장면 역시 없는 이 만화의 매력이 무엇이냐고요. 꼭 제 식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설거지할 집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가위를 사용하고, 두 개 이상의 그릇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마저도요. 공감이 되는 장면이 많으니 이 심심해 보이는 만화에 댓글이 5000개씩 달리는 거겠죠. 조금 부실해 보여도, 누워서 배달음식 주문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는 귀찮은 몸을 일으켜 가공식품이라도 데워먹는 것이 더 의미있으니까요. 새해에 한 끼라도 잘 차려먹자는 다짐을 했던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