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나비는 식구들 반기기에 꽤나 열심인 개입니다. 귀를 한껏 젖히고 현관까지 펄쩍펄쩍 뛰어나와야 보통인데, 그런 나비가 사람이 들어와도 딴청을 피우고, 불러도 못 들은 척 눈을 피하면, 역시나, 곧 들킬 사고를 저질러 놓았습니다. 제 잘못을 알고 마음 졸였나 봅니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별하는 도덕적 기준을 ‘양심’이라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양심을 일컬어 ‘마음의 삼각형’이라 했는데, 나쁜 짓 저지를 때 그 모서리에 찔린 마음이 아픈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말에도 ‘양심에 찔린다’는 표현이 있으니 그 죄책감과 수치심의 저릿한 통증은 시대불문, 국적불문. 나비조차 그러하니 종족도 불문입니다.
정치가 실종되었다고들 합니다. 옛 정객들의 소통과 담판 같은 낭만까지는 욕심이라 치더라도,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고, 서로의 선의에 기대어, 양보와 배려를 통해 국익을 우선하고, 국민의 안위를 도모하는 정치는 실종되었습니다. 대신 ‘법대로 해보자’는 수준 이하의 편가름과 증오가 자리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명색이 법을 만든다는 입법부 정치인들이 그 법에 빌붙어 사는 일개 검사의 손에 이끌려 재판을 받는 꼴을 봐야 하고, 일개 판사의 판결에 온 국민이 편을 갈라, 울고 웃는 꼴을 봐야 하는 마당입니다. 정치인들 스스로 정치를 포기했으니 그들이 만드는 법과 그들이 행하는 법치에 양심이라 할 것이나 수준이라 할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숙련된 검사를 상대방으로 만나가지고 여러분이 몇년 동안 재판을 해가지고 결국 대법원 가서 무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인생이 절단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학생들에게 인생의 지혜라도 되는 양 말했던 한 구절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려 그 말을 실행에 옮기는 모양새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는 지난 2년간 350번이 넘는 압수수색과 70명 이상의 검사 인력이 투입된 집요한 수사가 행해졌고, 5개 영역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도 마찬가지, 법은 가혹합니다. 반면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와 디올백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내 눈의 들보, 남의 눈의 티끌 식이니 “남의 죄를 말할 때마다 너 자신의 양심을 반성하라”는 격언에 비춰보면 이 나라 법의 양심, 그 마음속 삼각형의 모서리는 나비의 것에 비해도 한참 말랑말랑한 모양입니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시민들은 다시 광장을 메우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원래 이렇게 글을 잘 쓰셨나 싶은 시국선언문 낭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예로부터 지체 높으신 나리, 벼슬아치들은 나라를 망치거나, 나라를 팔아먹는 데 재주가 있었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는 데 탁월했으니, 나라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설 때면, 어김없이 의병이 일고 농민이 봉기했습니다. 민중의 피와 땀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양심과 수준을 망친 것은 그들이지만, 수치심은 우리 몫이니 할 수 있나요? 그들이 잃을 것은 알량한 지위와 부귀일 뿐, 우리가 잃을 것은 온 나라, 온 세상이니 별수 있나요?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죄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