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의 '대기업 품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2025-08-10

하림, 동원, 하이트진로, 농심, 그리고 올해 대기업집단으로 새롭게 지정된 사조까지. 국내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 식품 관련 그룹은 현재 다섯 곳에 불과하다. 일상 속 익숙한 브랜드와 K-푸드 열풍을 이끄는 영향력 덕분에 대부분 소비자에게는 '당연한 대기업'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자산총액 5조~10조원 미만의 '준대기업' 수준인 곳이 많다.

식품업계 특성상 기업 수는 많지만 개별 기업의 규모는 산업 전반과 비교해 크지 않다. 그래서 통상 '3조 클럽(연매출 3조원 이상)'에 속하는 10여 곳만 업계를 대표하는 대형 식품기업으로 불린다. CJ제일제당, 농심, 오뚜기, 대상, 동원F&B, 오리온, 풀무원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명칭이 무엇이든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지속가능성, 책임경영,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공시 의무가 강화되고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내부 거래에 대한 규제도 적용된다. 기업 입장에서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집단으로 진입하면 지원은 줄고 규제는 많아진다. 특히 후계 승계나 자산 운용에 유연성을 갖기 어려워진다. 기업집단 판단 기준에 총수 일가 및 친인척이 연루된 특수관계회사가 포함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편법 시도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농심은 2021년부터 3년간 대기업집단 지정 판단을 위한 자료를 허위 제출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친족회사 39곳을 누락해 최소 64개 회사가 규제를 피했고 일부는 세제 혜택까지 받았다는 게 사유다. 만약 사실이라면 규제 회피를 위한 조직적 시도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대한 사안이다.

올해 5월 대기업집단으로 새롭게 지정된 사조도 투명경영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부거래 비중이 과도하고 순환출자 구조는 복잡하며 오너일가의 이사회 겸직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조산업의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핵심지표 준수율은 26.7%로 같은 업계 하이트진로의 46.7%보다도 낮다. 대기업으로서의 책임경영이 요구되는 이유다.

식품기업들이 이처럼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건 단지 내수 시장 덕분만은 아니다. 글로벌 K-푸드 열풍에 힘입어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업계 1위 CJ제일제당은 미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K푸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성장 중이고 오리온은 중국, 베트남에서 현지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식품업계가 단순한 '생활 밀착형 산업'을 넘어 국내외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산업군으로 거듭나고 있는 지금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 수준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 먹거리만 대기업이어서는 안 된다. 경영도, 구조도, 신뢰도 대기업이어야 진짜 식품 대기업이라 할 수 있다.

내수 시장의 안주를 넘어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는 식품 대기업들, 이제는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과 투명성으로 진정한 '대기업 품격'을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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