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11월의 마지막 주쯤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나를 향해 누군가 밝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누구지? 옆집 거주자의 얼굴도 몰라 대충 감으로 때려 맞추며 인사하는 나에게 그렇게 밝게 인사할 사람이 없을 텐데 말이다. 바로 경계 레이더가 발동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그분은 나와 눈을 맞추며 지나갔고, 인사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어른이 인사를 했으면, 같이 인사를 해야지!’라는 룰을 몸으로 익힌 사회인으로서, 나 역시 밝은 톤으로 그분께 인사를 돌려드렸다. 그리고 경계 레이더가 꺼지는 데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푸드트럭 오는 날만 확인하던 아파트 게시판에서 입주민 대표 후보자 사진 속 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오지 않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처럼 그가 나에게 ‘인사’를 했을 때, 그날 이후 나는 이 아파트의 입주민대표 선거에 처음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 번의 인사가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사람과 제도 사이의 거리를 바꿔 놓았다.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적 거리를 느끼기보다는 평수와 집값, 역과의 거리, 학군과의 거리 같은 수치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적 거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위, 아래, 좌우로 수십 세대가 붙어 살지만,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다.
특히,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그 거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짧은 시간 동안 “안녕하세요.”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가도, 그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이, 어쩌면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사를 하는 편이 더 어색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물론 청년세대를 향해 “요즘 애들은 인사를 안 한다”라는 어른들의 시선에는 동의하지 않는 바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은 편의점, 카페, 식당 등 이른바 ‘서비스직’ 종사자 청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사를 입에 달고 산다.
2013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이상형’에 대한 2030 직장인 남녀 5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이상형 1위는 ‘매일 아침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는 스마일 형’이었다. 이어, 2020년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1601명을 상대로 진행된 함께 일하고 싶은 ‘신입사원 유형’ 설문조사에서는 ‘인사를 잘하는’ 신입사원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직장인의 응답률이 63.5%로 과반수가 ‘인사’를 중요시 여겨왔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통계들은 요즘 애들은 인사를 모르는 세대라기보다는, 인사를 ‘업무’와 ‘위계’의 언어로만 배운 세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고객과 상사에게 하는 인사는 익숙하지만, 옆집 이웃과 주변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어쩌면 인사는 이제 일상 밖에만 존재하는 어떤 문화가 된 것이 아닐까?
뉴스 속 ‘이웃’의 다양한 얼굴은 인사를 주저하게 만드는 한 요소로 작용한다. 어느 날은 피해자로, 어느 날은 무자비한 가해자로, 또 어느 날은 이웃을 구한 의인으로 보이는 이웃은 그저 ‘운’에 따를 수밖에 없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이다.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은, 작은 용기이자 위험을 감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인사가 ‘예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통용된다.
나 역시 삼십 대가 훌쩍 지난 지금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여전히 쑥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래도 경험상 인사는 해보면 생각보다 가볍고, 사소하고, 하는 순간 부담이 바로 사라져 버리는 몇 안 되는 행위 중 하나다. 인사받은 그날 역시 그 순간의 공기는 아주 조금 따뜻하고 달랐다.
우리는 상대를 깊이 알기 전에, 먼저 적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그 거리가 단숨에 가까워지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존재 자체를 잊게 된다. 인사는 그사이를 오가며 거리를 조절하는 장치와 같다.
연말은 인사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그러니 올해가 끝나기 전, 연말을 핑계 삼아 부담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한마디를 건네 보면 어떨까.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우리의 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히 바꿔 줄지 모른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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